[백영옥의 말과 글] [326] 자기 과장과 자기 비하
얼마 전 친구와 모임에서 찍은 사진을 받았다. 왜 이렇게 예쁘냐는 내 물음에 친구는 AI 프로필 앱으로 보정한 사진이라고 알려줬다. 사진 속 인물은 ‘나’였지만 분명 내가 아니었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가까웠다. 예전에는 성형외과에 연예인 사진을 들고 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AI 프로필 사진과 비슷하게 해달라고 상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보정 필터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실상’과 ‘환상’ 사이에서 자칫 길을 잃기 쉬운 존재가 됐다.
사회적으로 이런 분위기는 외면에 그치지 않고 내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살면서 받는 상처 때문에 각종 심리 상담과 코칭을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다. 문제는 이런 상담과 코칭으로 성장하는 ‘위로 경제’ 산업은 때로 자신과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는 걸 방해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SNS나 유튜브에 심리 상담 콘텐츠가 많이 올라온다. 대개 친구, 가족, 동료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인데 흥미로운 건 유독 조언의 많은 부분이 ‘손절’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호구가 아니다, 당신은 소중하니 당장 손절하라. 하지만 이런 충고는 자칫 세상만사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에 빠지게 할 수 있다. ‘투사’로 불리는 남 탓은 당장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섣부른 위로가 오히려 내면의 성장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우리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말이 유행인 사회에 산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상처(피해)로 받아들이거나, 사소한 일에도 트라우마, 가스라이팅,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억울한 이타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희생자 코스프레로 살아갈 필요도 없다. 우리를 둘러싼 ‘필터 버블 시대’에 과도한 ‘자기 과장’은 필연적으로 ‘자기 비하’를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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