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서 仁術 베푸는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
“목소리가 나오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26일 캄보디아 북서부 도시 바탐방 이꾸억 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끼 다니(31)씨가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날 이 병원에서 다니씨는 갑상샘 양쪽에 생긴 성인 남자 주먹 크기만한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3살 때부터 생긴 종양은 갈수록 커져 목을 눌렀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가 됐다. 같은 질환을 가진 동생 끼 스레연(23)씨도 이날 종양을 제거했다.
자매 중 동생의 수술을 집도한 하태권 부산백병원 교수는 “캄보디아는 내륙 지역 특성상 미역, 다시마 등에 다량으로 함유된 요오드 섭취가 부족해 갑상샘 기능 저하증 환자가 많다”며 “저하증과 동반하는 갑상샘 샘종(샘세포가 증식하여 생기는 종양)은 수술로 제거할 수 있지만 비싼 수술비로 인해 혹을 키우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블루크로스의료봉사단이 주최한 ‘2023 캄보디아 닥터장 수술 캠프’가 지난 22일~28일 동안 진행됐다. 봉사단은 22일 인천에서 프놈펜으로 이동해 다시 버스로 6시간을 달려 바탐방에 도착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의료인 및 봉사자 스무 명이 각종 수술 장비와 의약품을 이고 진 채로 걸음을 옮겼다. 닥터장 수술캠프는 2019년을 마지막으로 코로나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재개됐다.
캄보디아에서 10년째 사역하고 있는 김동균 선교사는 “바탐방은 캄보디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지만,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고 했다. 실제로 봉사단원들이 도착한 날 병원엔 예진이 예정된 환자들과 소식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차로 2시간 반 떨어진 국경 지역에서 온 환자도 있었다. 단원들은 현지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환자들을 살폈다. 환자 대부분이 한 번도 병을 치료하지 못한 취약 계층이었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과다복용으로 되레 증상이 악화된 경우도 있었다. 땀 묻은 펜으로 의료 차트와 수술 계획표를 일일이 써가며 수술 일정이 정해졌다.
이튿날부터 수술실 두 곳에서 숨 가쁘게 수술이 진행됐다. 최대한 많은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마취과 의사가 환자를 마취하는 동안 나머지 의료진이 회진을 돌고, 외과의가 종양을 제거하면 성형외과의가 수술 부위를 꿰매는 식으로 분업이 이뤄졌다. 현지 의료진 및 자원봉사자들도 손을 보탰다. 의료진은 3일 간 수술을 총 21건 진행했다.
닥터장 수술캠프 2회 때부터 매회 참가하고 있는 김운원 해운대백병원 교수는 “단지 의약품을 일회적으로 처방하는 게 아니라, 수술을 통해 병을 고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사명감을 가지고 매년 캄보디아를 찾고 있다”고 했다.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인 아빠와 함께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정관중학교 3학년 이나원 학생은 “의료인이 꿈이라 캠프에 참가하게 됐다”면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울산대 간호학과 3학년 김소희 학생은 “간호의 대상을 해외 환자까지 넓히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며 “간호사가 되어서도 다양한 환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이번 캠프를 이끈 단장 장여구 서울백병원 교수는 “수술캠프에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며 “더 많은 이들이 타인을 돕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장기려 박사는 6·25 당시 평양에서 월남해 이후 평생을 부산에서 피난민 및 빈민을 위해 인술을 베푼 인물이다. 장 박사는 오늘날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모태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창설하고, 국내 최초로 간 대량 절제술을 성공하는 등 한국 의료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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