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가을, 단 한 사람이 없어 헛헛한 그대에게

오진영 작가·번역가 2023. 10.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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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연결할 때 입력단자는 하나인데 출력단자는 왜 두 개일까
함께 음악 듣는 ‘마법의 3분’
단풍길./조선DB

연애를 할 때 좋아하는 노래를 상대에게 권하기도 하고 음반을 선물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상대가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은, “그대여, 나의 취향, 감성, 나의 정체성의 영토 안으로 한 발짝 더 깊이 들어와주오” 라는 초대장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너에게 들려주기’는 연애 시작 단계에 거치는 필수 과정이다. 나의 마지막 연애 경험은 남편을 만나 사귀었던 서른아홉 살 때였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둘 다 재혼이라 교제를 빨리 진행해야 했기에 밀당은 과감히 건너뛰었지만, 음악 들려주기라는 필수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었다. 당시엔 우리가 학생 시절 즐겼던 카세트 테이프에 음악 녹음해주기의 90년대 버전인 ‘CD 구워주기’를 흔하게 했었다. 내가 남편에게 선물한 건, 열 명쯤 되는 가수들이 다른 해석으로 부른 ‘I’ll be seeing you’(1938)라는 노래를 담아 구운 CD였다. 그 CD가 지금은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집 안에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영화 ‘비긴 어게인(2014)’에는 여주인공인 작곡가와 그를 발굴한 음반 제작자가 뉴욕의 밤 거리를 돌아다니며 전화기 안에 저장된 노래들을 ‘함께’ 듣는 대목이 있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지”라는 대사,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거든. 지극히 따분한 일상까지도 의미를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음악이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정말로 그렇다. 과거 어느 시절, 서로 간을 보다가 조급함이나 미숙함을 드러내고 흐지부지됐던 ‘썸’의 기억조차도 그 시절 들었던 노래 한 곡이 함께 떠오르는 순간 영롱한 광채를 뿜는 추억으로 둔갑하는 일이 종종 있다. 영화 속 그 장면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인풋이 하나 아웃풋이 두 개인 케이블, 두 사람이 한 기기의 음악을 동시에 듣게 하는 장치였다. 노래 한 곡을 같이 듣는다는, 2~3분의 시간 동안 생성하고 발전하여 완결되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체험은 두 사람을 강렬하게 밀착시킨다. 영화는 음악을 통한 공감을 누리고 싶다는 인간 보편의 열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를 만나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고 그래서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 대한.

그런 소망을 담아 건네는 ‘이 노래 참 좋아, 한번 들어볼래?’라는 제안. 하지만 선뜻 응했던 인내심도 찬란한 축제 같은 열정이 지나고 나면 차츰 각박해진다. 연애 초기에는 차 안이나 집에서 상대방이 틀어주는 음악을 들어도 주고, “그 노래 정말 좋구먼”, 맞장구도 쳐주지만 오래된 연인이 되거나 부부가 되면 더 이상 그런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그 노래가 좋아? 취향 특이하네! 하거나, 너무 시끄럽네, 음악 소리 좀 줄여줄래? 라고 무안을 안 주면 다행이다. 겨우 3분 남짓이건만. 매혹적인 음악에 빠져드는 마법의 3분여를 함께 해달라는 요청에 마음을 열기 쉽지 않은 건조한 시간은 오고야 만다. 인풋이 하나이고 아웃풋이 두 개인 케이블이 뜻하는 건 여러 명도 아니고 단 한 명만 있으면 된다는 간절함 같았다.

한 기기에 나란히 이어폰을 연결하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서글프고 마음이 허전하다. 그래서 오늘밤에도 페이스북에는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헛헛한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었어요, 이 책을 읽었어요. 여기를 가봤어요, 이런 걸 먹었어요, 마셨어요, 그래서 참 좋았어요, 라는 포스팅을 여기저기서 올릴 것이고 하늘에는 별이 바람에 스치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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