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병원이 아니에요, 교사가 모든 일을 감당할 순 없어요”
10년간 1000개 학교 ‘스쿨닥터’ 강윤형
지난 24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50대 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타살 정황은 없었고,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겼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100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교권 하락에 분노한 교사 3만여 명이 서울 도심에서 교육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그동안 고양시 초등 교사, 전 중학교 교장, 유성구 초등 교사, 군산 초등 교사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스스로 세상을 등진 교원은 144명에 달한다.
교직 사회가 ‘집단 우울감’에 빠졌다. 전교조와 녹색병원이 8월 16∼23일 전국 교사 3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교사 24.9%가 경도 우울 증상을, 38.3%는 심한 우울 증상을 보였다.
정신과 전문의 강윤형(59) 박사는 오래전부터 이런 상황을 우려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스쿨닥터’인 그가 지난 10년간 현장을 방문하고 분석한 학교는 전국 약 1000개. 2015년 전국 최초로 제주에 문을 연 학생건강증진센터 센터장을 지냈고, 교육부 산하 정신건강전문가학교방문지원사업단 단장,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 센터장 등을 맡았다. 2018년에는 유은혜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표창장도 받았다. 올해 1월에는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다. ‘원희룡 장관 부인’이기도 한 강 박사를 최근 서울 강남구의 병원에서 만났다.
◇교사의 집단 우울증
-교사들의 정신 건강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공교육 균열로 발생하는 문제예요. 과거에는 자녀를 선생님에게 모두 맡겨 놓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교권이 강했죠. 지금은 학부모가 너무 세세하게 개입해 선생님들이 스트레스를 받아요. 돌봄 시스템이 강화되면서 나오는 부작용이에요. 과거엔 학교 공부만 잘해도 좋은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파워가 상당 부분 사교육으로 넘어오면서 교사의 지위가 엄청 약화됐습니다.”
-저학년을 담당할수록 문제가 더 심각한 것 같아요.
“가정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생활 지도 기능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지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도, 가정의 돌봄 기능이 약해진 가족들이 증가하고 있어요. 그 결핍을 모두 교사가 메워주길 기대합니다”
-그럼 교권이 더 강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학부모들이 너무 똑똑해진 거죠. 교사에게 완벽한 걸 요구해요. 학교 폭력 문제 해결도 마찬가지죠. 본인들이 생각하는 100%의 이상형에 맞지 않으면 ‘이 교사는 욕먹어야 하고, 징계받고 지탄받아야 해’라며 쏟아내요. 교실에 CCTV를 설치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지요.”
-대부분의 문제가 학교 폭력에서 시작됩니다.
“학교 폭력의 정의는 힘의 불균형이에요.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향해 고의적으로 가하는 파괴적 행위거든요. 사실 예전부터 있던 거예요. 요즘 풍속이 뭐냐 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애들끼리 싸우면 부모들이 변호사를 대동하고 와요. 두 학생과 선생님이 삼자 대면해서 화해시키면 끝날 일을, 변호사를 대동한다? 법적인 문제로 커져 버려요. 그런데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육청이 개입하게 되고, 그 순간 학교는 손을 떼고 교사를 향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느냐’고 비판합니다.”
-왜 그렇게 일이 커지나요?
“학교가 잘못 끼었다가 손해 볼 게 너무 많은 거죠. 그리고 애들 입장에서는 징계의 흔적이 있으면, 원하는 학교 진학에 불리하니까 자기 아이의 잘못이 명백해도 부모는 어떻게든 아이는 죄 없는 것처럼 만드는 거예요. 왜곡된 교육열이죠.”
-교사가 어떻게 법적 책임을 지게 되나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일단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요. 교사가 무언가를 하면 학대한 거고, 하지 않으면 방임한 거죠. 그 법적인 문제를 교사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면, 설령 무죄가 나오더라도 그때까지의 정신적인 고통은 얼마나 크겠어요? 사람이 소진될 수밖에 없지요.”
-학부모의 시도 때도 없는 연락도 교사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요인 중 하나인데.
“일과 휴식에는 경계가 있어야 돼요. 간혹 선생님들이 자의나 타의로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러면 절대 안 된다’고 해요. 근무 시간까지 선생님인 거고, 그 이후 모든 민원은 대표 전화를 통해 접수돼야 해요. 응급 상황은 교내 비상연락망으로 해결해야죠. 모든 걸 선생님이 다 할 수는 없어요.”
◇치료가 필요한 학생들
-학교와 병원이 연계해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나요?
“학교에서 3년에 한 번씩 국가적으로 정서행동 특성검사라는 걸 해요. 정신 건강 고위험군 아이들을 파악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나면 외부 병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가 돼요. 그런데 문제는 보호자 동의 없이는 진행이 안 됩니다. 그리고 보호자들은 혹시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소위 ‘스티그마(stigma·낙인)’가 찍히지 않을까 걱정해 진행을 거부해요. 정신과 문턱이 높은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학생 한 명이 학교를 들었다 놨다 해요. 걔는 치료가 필요한 아이예요. 이 아이를 선생님이 지도하는 건 너무 어려워요. 교실은 교육의 현장이지 치료의 현장이 아니잖아요?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아이들 학부모는 민원을 넣기 시작하죠.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정신 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 비율은 전체의 20% 정도라고 해요.”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요.
“아동 청소년기 문제는 일종의 뇌질환이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빠르게 좋아질 수 있고, 오히려 학업 성취가 더 높아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학교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저나 정신과 의사들이 가서 학부모를 설득하면 거의 100% 진료 받으러 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학교 선생님이 한다? 그러면 ‘선생님이 우리 애를 편견 가득한 눈으로 보는 거 아니냐’며 불신하는 거예요.”
-학교 현장에 가보면 어떤가요?
“병원에 올 수 있는 아이들은 축복받은 아이들이에요. 생활 지도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많은 아이들이 사실은 정신과적인 문제, 가족 문제 등을 가지고 있었어요.”
-예를 든다면.
“우울증에 걸린 남자 아이가 있었어요. 형에게 학대받는 아이였는데, 어머니도 정신 질환이 있어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고, 아버지는 폭력적이었죠. 가정 방문을 했더니 우울증으로 누워만 있어서 손발톱이 5㎝씩 돼요. 먼저 병원에 단기 입원을 시켰어요. 일단 형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형까지 같이 정신과 치료에 들어가요. 한 아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해요.”
◇원희룡 장관의 부인
-제주도 여자 1등이었다고 들었는데 학창 시절 꿈이라면.
“중학교 땐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에 가면서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의사를 생각하게 됐죠.”
-정신과를 선택한 이유는요.
“대학교 때 데모를 엄청 했어요. 때려치우고 민주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또 운동을 해 보니 제가 생각한 운동권이 아니었어요. 그때 개인적인 고민과 우울감이 정말 심했죠. 정신과 공부를 하며 제 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원희룡 장관과 결혼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제주도 학생 모임에서 처음 만났어요. 학교를 휴학하고, 어쩌다 한 번씩 행정 문제로 관악캠퍼스에 갔는데 우연히 만나는 거예요. 그땐 휴대폰도 없던 시절인데, 자주 가지도 않는데, 갈 때마다 마주치는 거죠. 그때 생각했죠. 이게 인연이구나.”
-원 장관 어디가 좋았나요?
“손이 크고 투박하고 따뜻해요. 농사꾼의 손이라고도 하던데, 그 손을 딱 잡으면 되게 좋았어요. 그리고 목소리가 좋아요.(웃음)”
-원 장관의 부인으로 불리는 게 섭섭하지 않나요?
“전혀요. 남편이 정치에 뛰어든 게 37세였어요. 그 뜻을 이해했기에 저는 우리 집 대표 선수로 뒷바라지를 하자고 생각했죠. 선거 때마다 병원 문 닫고 도와줬고요. 근데 남편이 3선 국회의원을 마치고 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낭인 생활을 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저도 병원을 처분하고 둘이서 2년간 배낭족처럼 여기저기 다녔죠. 그때 제가 50세였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중에 ‘당신 때문에 내 삶을 못 살았다’는 원망을 하게 되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애들도 키웠고, 세상에 나온 이상 내 몫의 밥값을 해야겠다고. 그때 교육청 일을 시작했어요.”
-원 지사 덕분에 들어갔다는 논란도 있었지요.
“처음 시작한 곳은 국립정신건강센터였어요. 그런데 남편이 제주도를 가게 된 거죠. 그때 제주도 교육청에서 사람을 못 구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거예요. 그 연봉을 받고 교육청에서 일하려는 의사가 없으니. 그래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180개 학교 중 155개 학교를 갔어요.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파악하고, 치료하고, 지도하는 거였어요. 이것을 하니깐 기적들이 발생한 거예요. 성산포에 있는 한 특성화 고등학교는 한 해에 50명씩 탈락했는데, 그해 탈락자가 0명이었어요. 제주 학생 자살률도 0명이 됐고요. 그러니깐 비판이 쑥 들어가더라고요. 오히려 전국의 교육청에서 정신과 의사를 뽑겠다고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때 경험으로 만든 모델이 정신건강 전문가 학교 방문 사업이에요.”
2021년 그는 대구의 한 신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적이 있다. 진행자가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언행과 행보를 언급하며 ‘지킬 앤 하이드’와 ‘야누스’에 빗댔고, 그는 “정신과적으로는 ‘지킬과 하이드’나 ‘야누스’라기보다 소시오패스나 안티소셜(Antisocial·반사회적)이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 영상 중 2분이 채 안 되는 이 발언으로 온갖 비판 세례를 받았다.
-소시오패스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셨는데요.
“그 전까진 남편의 경쟁자에 대해 말을 보탠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 진행자의 말에서 틀린 정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전문가적 기질이 발동한 거예요. 즉시 ‘특정인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일반론적으로 소시오패스의 정의가 그렇다’고 첨언했지만, 소용이 없었죠. 그 사건 이후 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원희룡 장관은 요즘도 “내 생애 가장 잘한 선택은 강윤형을 만난 일”이라고 말한다.
-결혼 30년 차인데, 관계 유지의 비결이 있습니까.
“다름을 인정해야 해요. 남녀 간 사랑의 시효는 길면 3년이라잖아요. 이후에는 옥시토신으로 사는 거죠. 쉽게 말해 서로를 돌봐주는 건데, 이 시기 가장 중요한 게 ‘의도’와 ‘약속’이라 생각해요.”
이 부부는 결혼 직후 정한 십계명을 여전히 지키며 산다. 서로 존댓말 쓰기, 욕하지 않기, 물건 던지지 않기, 집 나가지 않기, 각방 쓰지 않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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