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네… 좌석 등받이, 어디까지 젖혀야 하나요?

정상혁 기자 2023. 10.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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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권리냐 매너냐 양자택일
民度 척도 된 ‘의자 각도’

“아니, 애초에 이만큼 젖히도록 만들어진 건데 뭐가 문제냐니까요?”

고속버스 안에서 시비가 붙었다. 한 젊은 여성 승객이 좌석 등받이를 최대치로 젖혔고, 뒷자리 승객이 불편을 호소하자 버스 기사가 여성 승객에게 의자를 조금만 세워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뒷사람이 거의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밀착된 형국이었다.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를 누리는 게 맞지 않느냐”는 설득에도 여성은 완강했다. “거절하는 것도 제 의사인 거잖아요.” 지난 17일, 이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다. 비슷한 피해를 경험했다는 동조자부터, 얼마나 젖히건 승객의 자유라는 의견까지.

◇‘내 권리’ 對 ‘내 공간’

일러스트=유현호

민폐와 권리를 가르는 ‘각도’는 존재하는가. 며칠 전 SRT 열차 안에서도 동일한 다툼의 현장이 포착됐다. 뒷자리 여성이 일어나 앞자리 남자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지금 다른 (사람들) 의자들 보세요. 이렇게 뒤로 누웠는가.” 그러자 남자도 발끈해 욕설로 응수했다. “무슨 ×소리예요 아줌마.” 이제부터는 감정싸움이었다. “의자 세우라고!” “왜.” “왜? 내가 불편해서!” “난 안 불편하나.” 이 영상 역시 큰 파장을 낳았고, 여기서도 의견은 갈렸다. “승객이 의자를 젖히는 게 잘못이라면 아예 고정시켜 놨어야죠.” “앞사람이 뒷사람 공간까지 산 건 아니잖아요.”

좌석 등받이 논란, 이른바 ‘Recline Gate’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명확한 기준이나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아 폭행 사건으로까지 번지는 등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도로운송차량보안규칙’에 따르면, 승합차의 앞좌석 등받이 뒷면과 뒷좌석 등받이 앞면의 거리는 65㎝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이건 좌석이 90도로 세워져 있는 상태가 기준. 젖히는 순간 간격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KTX(최대 36도)나 SRT(최대 40도) 등 기차도 마찬가지. 사실상 승객의 융통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SRT 관계자는 “에티켓의 차원인지라 개입하기가 어렵다”며 “좌석 변경을 원할 경우 조치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젖힘 방지 도구’까지

비행기에서 좌석 등받이를 젖힐 수 없도록 막아버리는 'Knee Defender'(무릎 보호대·회색 플라스틱 제품). 미국에서 출시됐지만 승객 간 감정 싸움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퇴출됐다. /유튜브

비행기에서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훨씬 오랜 시간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기에. 여행 플랫폼 아고다(Agoda)가 진행한 ‘2023년 민폐 여행객 설문조사’에서도 등받이 젖힘이 가장 화나게 하는 행태 중 하나로 꼽혔다. 지난 4월에는 1만m 상공의 중국 여객기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앞사람이 등받이를 눕히자 뒷자리 승객이 의도적으로 발을 올리고 흔드는 등의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경찰단은 최근 여객기 승객 간 등받이 젖힘 다툼이 발생해 현재 2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항공사가 이착륙 및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등받이를 얼마나 젖히든 자유에 맡긴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특별한 아이템이 출시된 적이 있다. 이름하여 ‘무릎 보호대’(Knee Defender). 뒤로 젖히지 못하도록 고정해버리는 일종의 걸쇠다. 2014년 이를 발견한 앞자리 여성이 분에 못 이겨 뒷자리 남성에게 물을 끼얹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덴버로 향하던 유나이티드 항공기는 결국 시카고로 경로를 틀어야 했다. 이후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비행기 좌석 손상 등의 이유로 ‘Knee Defender’ 반입을 금지했다.

◇버튼 없애버린 항공사들

미국 CNN은 “이런 에티켓 때문에 승무원들이 학교 운동장의 모니터 요원이 돼야 하는 업무 지장 비용이 발생한다”고 했다. 갈등의 요소를 원천 차단하는 항공사도 늘고 있다. 아예 의자에서 등받이 젖힘 버튼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스피릿항공 등 저비용 항공사를 중심으로 이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조절 버튼을 없앤 대신 15도 혹은 18도 정도로 아예 ‘미리 젖혀진 의자’를 도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시트 제조 업체 레카로 CEO 마크 힐러는 “승객의 공간이 방해받지 않고 항공사의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공간이 좁을수록 더 넓은 아량을 필요로 한다. 델타항공 CEO 에드 바스티안은 “승객은 몸을 젖히기 전에 뒷사람이 괜찮은지 먼저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좌석을 젖히는 속도도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급발진보다는 조금씩. 일본 여행 매체 재팬가이드닷컴은 “장거리 열차에서 좌석을 뒤로 젖힐 때는 뒷사람을 배려하라”며 “예고 없이 갑자기 뒤로 젖히지 말라”는 에티켓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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