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입으면 기분 조크든요” 90년대 X세대 말투에 푹 빠진 MZ

배준용 기자 2023. 10. 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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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패션·음악 넘어 말투까지
90년대에 열광하는 청춘들
코미디 예능 ‘SNL 코리아’가 1990년대 X세대 문화를 패러디한 코너가 인기를 끌고 있다./유튜브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습니까?”

“아뇨,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1994년 9월 한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하며 자신의 패션을 당차게 뽐내던 20대 여성은, 이때 자기가 한 말이 30년 뒤 다시 화제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선 그녀가 던진 “기분이 조크든요”가 가장 핫한 유행어 중 하나다. 손흥민이 골을 넣으면 “손흥민이 골을 넣어서 기분이 조크든요”라든가, 유명 식당 메뉴 인증샷을 SNS에 올리며 “이렇게 먹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하는 식이다.

1990년대를 주름잡던 X세대 시절이 담긴 뉴스 영상이 MZ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카메라 앞에 서면 말이 길어지고 조금은 주눅 든 모습을 보이는 요즘 사람들과 달리, 1990년대 청년들은 취재용 카메라 앞에서도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왜 이렇게 이상한 머리를 하고 다니냐’는 다소 무례한 기자의 질문에 꽁지머리를 한 X세대 청년은 “멋지잖아요. 남들은 신경 안 써요. 제 개성이거든요”라며 당차게 받아친다. 오렌지족의 과소비와 탈선 행각을 보도하는 뉴스에선 “4명이 (술집에) 들어가면요, 보통 양주 한 2병은 가뿐하게 먹거든요? 16만원 정도 나와요”라며 호기를 부린다. MZ들은 “요즘과 달리 X세대는 거침이 없고 당돌하다”며 신기하고 재밌다는 반응.

이를 패러디한 개그도 폭발적인 인기다. 특히 코미디 예능 프로 ‘SNL 코리아’에서 1990년대 X세대 문화와 오렌지족, 나이트클럽 단속 뉴스 등을 패러디한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수백만을 기록 중. “오늘 나이트 물 지대 좋다는데, 한번 떠볼래?” “어머, 당근빠데루지”라는 촌스러운(?) 유행어 대사에 MZ 네티즌들은 ‘저게 뭐야’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특히 MZ들이 관심을 갖는 건 X세대들이 썼던,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서울 말투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제가요, 요즘에 X세대거든요. 즈이는 남들 시선 따위는요, 전혀 신경 쓰지 않거든요”처럼 ‘~요’로 짧은 문장을 이어가며 톡톡 튀게 말하는 것. ‘~했는데’라는 표현으로 문장과 말을 길게 이어가고, 말끝은 ‘~같아요’로 단정적인 표현을 피하는 요즘 말투와 차이가 크다. 짧은 문장을 빠르고 거침없이 내뱉은 X세대의 인터뷰를 보며 MZ들은 “지금과 달리 개성 있고 당차고 유쾌한 느낌” “지금보다 세련되고 고급지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그 당시 서울 말투가 원래 서울 말에 가깝다”고 한다. 현재 서울말의 억양과 말투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늘면서 원래 서울 말과 지방 방언이 섞여 변형됐다는 것.

맞는 말일까. 전문가들은 “왜 달라졌는지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면서 여러 추론을 제시했다. 김수영 한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말을 할 때마다 ‘~요’로 단문으로 잘라서 말하는 건 중부 방언, 서울 사투리의 특징 중 하나”라며 “과거에는 방송 등에서 문어체, 격식체 표현을 많이 쓰다가 사회 분위기가 많이 자유로워지면서 ‘~요’와 같은 구어체, 비격식체 표현이 늘었는데, 1990년대에 그런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과거 서울 방언은 장음과 단음을 구별해 발음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구분도 거의 사라졌단다. 가령 ‘말씀’ 같은 경우 과거엔 ‘말-씀’으로 길게 발음했는데, 최근에는 단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김수영 교수는 “서울과 경기 방언의 특징 하나는 부정 표현을 할 때 ‘~않다’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최근에는 이보다 ‘안 좋다’ ‘안 맞는다’처럼 부정이 앞으로 오는 표현이 많아졌다”고 했다.

‘~요’로 단문을 이어가는 X세대의 말투는 지역 방언이 아닌 세대 방언이라는 추론도 있다. 김태경 한양대 한국어문화원장은 “X세대가 자주 쓴 ‘~거든요’와 같은 표현은 본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거든’이라는 어미에 비격식 존대를 뜻하는 보조사 ‘~요’가 결합한 것”이라며 “문장을 토막 내어 ‘요’를 붙이는 건 다소 유아적인 말투일 수 있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특이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X세대의 독특한 말투를 보며 MZ들은 “당찬 X세대가 부럽다”는 반응까지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당시 분위기가 너무 좋다”라든가, “우리 부모님 세대가 서로 아재 개그 하면서 유쾌하게 노는 느낌이 뭔지 알 거 같다”는 등 대체로 지금 청년 세대와 달리 X세대가 훨씬 더 자유분방하고 당돌한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에게는 역시나 당돌한 MZ들인데, 이들은 왜 X세대를 부러워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사회 경제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풀이한다. X세대 출신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1990년대는 대한민국이 고성장하면서 모두 소득이 늘었고 청년들이 취업이나 결혼에 대한 부담도 적었던 시대”라며 “또 청소년 시절 교복 자율화 세대였기 때문에 패션과 음악에서 자유분방했고 아마 가장 기고만장했던 세대”라고 했다. 계층 구분 없는 경제적 풍요와 정치·사회적 자유가 맞물리면서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 가장 거침없이 도전한 세대였다는 것.

반면 MZ들의 당돌함은 X세대와는 결이 다르다. 김헌식 평론가는 “지금 청년들 대부분이 취업, 결혼, 자가 마련 등에 부담이 크다”며 “그래서 공정 이슈처럼 자신에게 당장 불이익이 될 수 있는 문제에 강하게 저항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IMF 외환 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점점 양극화됐기 때문에 “X세대는 한국 사회에 마지막으로 존재한 균질적 세대”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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