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마지막 경쟁자, “하늘이 보고있다” 말 남기고 떠났다
중국중앙(CC)TV는 이날 “상하이에서 휴식하던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병이 발병했다”면서 “구조대원들이 전력을 다했지만 27일 0시 10분 숨졌다”고 전했다.
● 시 주석 ‘마지막 경쟁자’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정치·외교·국방을 맡고 총리가 경제를 총괄하는 권력 분점 체제는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되며 무색해졌다. 이후 10년간 리 전 총리는 자유시장 경제를 강조했지만 시 주석은 공산당이 앞장서는 사회주의 통제경제를 주장하며 갈등이 축적됐다.
권력과 영향력은 차츰 소멸됐지만 리 전 총리는 소신 행보를 이어갔다. ‘중국 빈곤층 6억 명’ 발언과 ‘노점 경제 활성화’ 주장이 대표적이다.
리 전 총리는 2020년 5월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6억 명 월 수입은 1000위안(약 17만 원)에 불과하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시 주석은 “2015년 5600만 명에 달한 절대빈곤 인구를 2019년 550만 명까지 줄였다”면서 “2020년까지 0명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할 때였다.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었다.
그해 6월에는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노점상을 전면 허용하는 ‘노점 경제’를 주장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 활동이 거의 중단되고 방역이 최우선시되면서 그의 권한과 역할도 사라졌다. 한때 ‘미래의 태양’이라 불리며 ‘제5세대 지도부는 시진핑-리커창 쌍두마차 시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유령 총리’로 전락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그는 중국 역대 최약체 총리”라면서 “하지만 그의 문제는 무능력(incompetence)이 아니라 무기력(impotence)에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유령 총리’로 전락
리 전 총리는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다. 1985년 쓴 ‘중국 경제의 3원 구조를 논한다’는 중국 경제학계 최고상인 ‘쑨예팡(孫冶方) 경제과학상 논문상’을 받았다. 부인 청훙(程虹) 여사는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전공한 영문학자로 두 사람은 평소 영어로 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주의적 사고를 갖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극강(克强)이라는 이름에 빗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以柔克强·이유극강)’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후 전 주석의 석연찮은 퇴장과 ‘리틀 후’ 리 전 총리의 죽음으로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리 전 총리가 퇴임 5개월여 만에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을 찾았을 때 중국 관광객들이 환호했던 것은 현재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이를 반영하듯 27일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는 “침통한 마음으로 애도한다”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같은 추모 글이 50만 건 넘게 올랐다.
그는 올 3월 퇴임하면서 국무원 직원 800여 명에게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고 했다. 무소불위 시 주석의 권력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정부는 27일 “한국의 가까운 친구로서 한중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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