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울렁증” “면접 공포증”… 심하면 ‘사회불안장애’ 의심해봐야[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실수하면 ‘무능력’ 낙인 걱정… 파국적 사고가 불안감 부추겨
“꼭 성공해야” 완벽주의도 원인… 창피함 탓 방치하면 만성화 우려
인지행동치료, ‘성공 경험’ 강조… “우려보단 괜찮았다” 체험해야
프레젠테이션이나 면접, 공연 등 여러 사람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은 누구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특히 평가를 받는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적정 수준을 넘는 과도한 긴장감으로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정도라면 얘기가 다르다. 상사 앞에서 업무 성과 발표하기가 두려워 승진 기회를 놓치거나, 발표 과제가 부담돼 듣고 싶은 수업을 바꾸는 등 하나둘 포기하는 게 늘어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심지어 가수나 연주자 중에는 무대 공포로 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손이 굳어 진로를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관찰·평가당하는 상황에 극도로 공포
겉으로 드러난 공식 집계만 보면 국내 유병률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아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불안장애의 유병률은 1%도 되지 않는다. 허나 관련 증상의 특성상 창피하다는 이유로 혼자 끙끙거릴 뿐, 치료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아 숨은 사례가 훨씬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유병률을 높게는 13% 정도로 보기도 한다. 적어도 10명 가운데 1명은 사회불안장애 증상을 겪을 수 있단 뜻이다.
낯선 사람이나 이성과 대화할 때 과도하게 긴장하는 것도 사회불안장애 유형 가운데 하나다. 남들 앞에서 먹거나 마실 때 시선이 신경 쓰여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그렇다. 공중화장실에서 누가 쳐다보거나 소리가 날까 봐 볼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례도 꽤 있다.
사회불안장애는 불안을 느낄 때 신체 증상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며,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손발에 땀이 나고 파르르 떨리기도 한다. 타인에게 들킬까 봐 신체 감각에 예민해질수록 더 긴장하게 된다.
이럴 때 불안 증상을 숨기기 위한 ‘안전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대한 목소리를 작고 빠르게 말하거나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식이다. 또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가리기 위해 큰 안경을 쓰거나 화장을 일부러 짙게 하는 경우도 있다.
●“실수하면 끝장” 왜곡된 생각이 증상 부추겨
비정상적 긴장의 핵심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비합리적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실수하면 사람들이 무능하고 멍청하다고 생각할 거라 여긴다. 게다가 이런 막연한 예측을 객관적 사실로 확고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에 실수하면 ‘모든 게 끝장난다’는 파국적인 생각도 더해진다. “발표를 못하면 무능하다고 회사에서 잘릴 것이다” “면접을 망치면 나는 인생의 실패자가 될 것이다”라고 여긴다. 완벽주의에 집착하는 경향도 한몫한다. 100% 온전하게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라고 여기기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에도 ‘모든 걸 망쳤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진다.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걸까. 이런 속내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잘하지 못하면 자신이 한심하고 무능한 사람이 되고, 인생도 망친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과도하게 떨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타인의 부정적 반응을 실제보다 훨씬 큰 위협으로 느낀다.
남궁기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재앙이 일어날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더 긴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떨림 숨기려는 노력은 역효과
사회불안장애는 방치하면 만성으로 가기 쉽다. 다행히 ‘인지행동치료’라는 효과적 치료법이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왜곡된 인지 과정과 대처 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러러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불안해지고, 어떤 비합리적인 사고가 나타나는지 알아야 한다.
만약 발표 중에 누군가 피식 웃었다고 상상해보자. 이때 비합리적 사고를 하는 이들은 대뜸 ‘내가 한심해서 그렇다’ ‘발표를 망쳤으니 나는 무능하다’고 믿어버린다. 왜 웃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심한 논리적 비약이 이뤄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긴장해서 나오는 신체 반응을 숨기려는 ‘안전 행동’을 파악해 중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목소리 떨림을 숨기려고 작게 말하거나 시선을 피하면 정작 말하려는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아 상대방에게 진짜로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또 이런 ‘안전 행동’을 하지 않아도 회사에서 잘리는 등 상상했던 최악의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지속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사회불안장애 치료에 특화된 교내 연구센터를 맡고 있는 안정광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말하는 내용이 아닌, 내 신체에 너무 많은 주의를 쏟는 게 문제”라며 “긴장될 때 주의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서 눈앞의 과제로 돌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성공 경험이 중요…“타인들, 별로 신경 안 써”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불안한 상황을 잘 견디는 성공 경험을 쌓는 것이다. 여기서 ‘성공’이란 남부럽지 않은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우려했던 것보단 괜찮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남궁 교수는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사람들이 긴장한 모습을 전부 다 알아볼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실제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또 “발표 중에 숨이 막히거나, 연단에서 뛰어 내려오는 극단적인 상상을 했더라도, 실제로는 ‘떨렸지만 생각보다 할 만했다’고 느끼면 다음부터 훨씬 좋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극도의 불안 상태로 몸을 내던지라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치료자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극복을 시도해보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적당한 떨림을 유발하는 중간 정도 난도부터 시작해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 좋다.
발표, 면접, 공연 연습 영상을 촬영해 관찰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이 생각했던 것만큼 긴장한 모습이 끔찍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도움이 된다. 다만 불안감을 낮추는 근본적 치료가 아닌, 발성이나 화법 교정을 강조하는 기술적 접근만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취업 면접 등 어쩔 수 없이 압박적인 상황을 견뎌야 하는 경우라면 일시적인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심장 두근거림을 낮추는 약이나 항불안제, 항우울제 등도 때에 따라 도움이 된다.
모든 치료법을 총동원한다고 긴장을 100% 없앨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치료 효과에 대해서도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그럭저럭 해낼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안 교수는 “치료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실패 경험이 쌓여 더 불안해질 수 있다”며 “떨리지만 ‘적당히 잘하자’ ‘대충해도 된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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