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 확장·자율 경영 역풍…체계적 리스크 관리 ‘구멍’

2023. 10. 2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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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위기론 배경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16만원대까지 거침없이 올랐던 주가가 2년 4개월 만에 4만원 아래로 4분의 1 토막이 났다. 투자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창업자 등 경영진은 사정당국의 집중 조사를 받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카카오 얘기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23일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전 이사회 의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공개 소환, 15시간 40분에 달하는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2월 카카오가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 경쟁을 펼칠 당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 주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다. 조사 결과에 따라 구속 영장이 신청될 수도 있다.

창업자 김범수, SM 주가조작 혐의 조사

단순히 김 전 의장만 타격을 입는 오너 리스크에 머물지 않는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가 진행 중인 카카오와 SM 간 기업결합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에 금감원은 김 전 의장 등 경영진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카카오에 자본시장법상 양벌규정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벌규정은 법인의 대표자나 종업원 등이 업무 관련 위법 행위를 할 경우 법인에도 형사 책임을 묻는 조항이다. 이로 인해 카카오가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분을 받으면 인터넷은행특례법상 은행 대주주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카카오뱅크를 팔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그룹 전체의 위기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카카오의 각종 신사업 추진도 이미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예컨대 카카오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모빌리티의 기업공개(IPO)는 사법 리스크로 무기한 연기될 공산이 커졌다. 네이버 등 경쟁사와의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에서도 고전이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사법 리스크가 카카오 주가 폭락과 위기론 배경의 전부일까. 어쩌면 코로나19 팬데믹 때 언택트(비대면) 열풍의 최고 수혜 기업으로 꼽힐 만큼 승승장구하다가 엔데믹 전환으로 기세가 꺾인 것도 배경일 수 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하지만 정보기술(IT) 업계와 카카오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지금껏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내실 강화’와 경영진의 성찰보다는 무분별한 인수·합병(M&A)에 따른 ‘문어발식(式) 덩치 키우기’에 전념했던 카카오의 구조적 문제가 현재 위기의 핵심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카오는 (카카오톡 등) 플랫폼을 키우는 과정에서 사업 연관성이 작아 보이는 중소 규모 기업들까지 과감히 선제 인수하는 전략을 취했는데 이는 계열사 리스크로 이어졌다”며 “선택과 집중으로 그룹의 내실을 다지는 데도 더 신경을 써야 했다”고 분석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8월 기준 카카오 계열사는 총 144곳으로, 2021년 2월(105곳) 대비 2년 6개월 만에 37.1%(39곳)나 증가했다. 국내 대기업 중 SK그룹(상반기 기준 201곳)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물론 계열사 숫자만으로 좋고 나쁨을 구분하긴 어렵다. 잘 경영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카카오의 경우는 이렇게 계열사 수 늘리기에 전념하는 사이 골목상권 침해 논란(2021년),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서비스 먹통 사태(2022년), 포털 다음의 매크로(자동화 프로그램) 조작 논란(2023년) 등으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기업 평판이 저하되고 실적에도 타격을 입는 악순환을 겪었다. 이 과정 속에 2020년 10.97%였던 카카오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8.17%로 악화했다. 올해 증권가 전망치는 5.7%에 그친다.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카카오는 경영진이 뚜렷한 구심점을 갖고 계열사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관리하기보다는 계열사별 ‘자율적 책임 경영’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불어나는 그룹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리스크 관리에 취약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다른 대기업보다 카카오에서 유독 많이 불거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카카오 대표로 내정됐던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는 주식 ‘먹튀’ 논란으로 사퇴했다가 다시 카카오페이에 비상근 고문으로 위촉돼 논란을 일으켰다.

서비스 먹통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도 퇴사 전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행사로 약 94억원을 챙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소액주주들을 허탈하게 했다. 지난달엔 김기홍 전 카카오 재무그룹장이 법인카드로 1억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을 결제한 배임·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카카오가 강조하는 계열사별 자율적 책임 경영이 실상은 ‘책임 없는 자율 경영’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IT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는 말단 직원이 김범수 전 의장을 브라이언(김 전 의장의 영어 이름)이라 부르고, 부서 상황에 따라 하급자도 팀장이 되어 상급자를 통솔하는 등 직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갖췄다”며 “이 같은 문화가 장점으로 작용해 기업 성장의 촉매제가 됐던 게 사실이지만, 일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논란을 보면 적어도 윗선에선 개선이 시급한 문화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아울러 문어발식 사업 확장 과정에서 외부 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도 악순환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글로벌 ‘큰손’들의 입김이 센 것이 카카오 경영진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20년 상장한 카카오게임즈는 중국 텐센트의 투자를 받았고, 2021년 상장한 카카오페이도 당시 지분율 45%의 2대 주주가 중국 앤트그룹이었다. 상장을 추진 중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사우디 국부펀드 등으로부터 1조2000억원을 투자 받은 상황이다. 이런 큰손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기업 가치를 단기간 확고하게 끌어올려야 하고, 이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SM 인수 등 변수를 만들어 IPO 성사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해석이다.

이런 가운데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는 SM 인수 관련뿐 아니라 다른 핵심 계열사에서도 아킬레스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오프라인 가맹점 모집 과정에서 불법 지원금을 우회 수수한 의혹으로 7월 경찰 수사선상에 오른 바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월 공정위로부터 택시 배차 알고리즘 조작과 관련된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271억원을 부과 받았다. 승객 호출 콜을 자사 가맹 택시인 카카오T블루에 몰아줘 비가맹 택시를 차별한 혐의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기술 도용 의혹에도 휩싸였다. 화물 운송 중개 플랫폼인 화물맨이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사 특허·기술 정보를 이용, 새 서비스를 준비했다며 최근 공정위에 탄원서를 제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카카오 주가, 2년여 만에 4분의 1 토막

카카오의 잇따른 사법 리스크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치적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현 정부가 포털 사이트 ‘다음’에 대해 진보적 성향의 사용자가 많다고 보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카카오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 초 정부는 다음의 ‘아시안게임 응원 페이지 여론 조작’ 의혹을 계기로 여론 조작 방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의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이 열린 이달 1일 다음·카카오 응원 페이지에는 중국팀 응원 클릭 비율이 한때 91%에 달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다음에 조작 세력이 가담한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날을 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진보적 성향의 다음을 목표로 하는 만큼 카카오의 수난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잇단 위기 속에 분위기 쇄신을 위해 계열사 전략을 조율하는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를 총괄 4인 중심 체제로 지난달 개편했다. 정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와 네이버 출신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재단 이사장이 합류해 기존의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 권대열 카카오 정책센터장과 함께 컨트롤타워를 재구성했다. 향후 각 계열사에서 결정한 투자 유치나 M&A 등을 CA협의체가 최종 판단하는 식으로 꾸려서 계열사별 자율 경영의 한계를 보완하는 등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범수 전 의장에 앞서 SM 주가 조작 관여 혐의로 조사를 받던 배재현 대표가 19일 구속되면서 여기에도 또 다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카카오 관계자는 “지난달 CA협의체가 내부 경영 활동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등 CA협의체를 지속적으로 정비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카카오 측은 주요 경영진의 공백 또는 추가 공백 가능성으로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상경영 체제 돌입설 대해선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카카오는 내부 의사 결정 구조 보완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라며 “리스크 관리를 위한 시스템 마련에 힘써야 투자자들이 그룹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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