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 LA로 부른 이건희 회장의 특명 "쇼핑하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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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신경영 30년, 혁신의 길을 묻다] ① 너 자신을 알라
현명관 당시 회장 비서실장 증언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거론되는 사람이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이 회장이 신경영으로 변방의 기업이던 삼성을 세계 1등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혁신을 얘기하는 기업가는 매우 많지만 혁신에 성공한 기업가는 정말 극소수다. 이 회장은 어떻게 신경영을 성공시켰을까. 마침 올해는 1993년 신경영이 시작된 지 30주년인데다 27일 이재용 회장 취임 1주년을 맞아 ‘뉴 삼성’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이 회장 곁에서 신경영을 주도한 현명관 당시 비서실장(후일 삼성물산 회장 역임)이 30년전 신경영 초기의 자료를 중앙SUNDAY에 제공해 왔다. 그의 기억과 자료를 통해 이건희의 신경영 성공비결을 4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국경없는 경제전쟁 등에서 식은 땀 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달랐다. 그 무모한 세계 1등의 꿈을 30년 전에 꿨다. 그리고 해냈다. 지금도 스마트폰과 D램, 낸드플래시, OLED, 초박형 TV 등은 세계 1등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OLED 등은 세계시장 점유율이 무려 70~80%다. 태블릿 단말기와 휴대용 리튬이온 배터리, 이미지센서, 냉장고 등은 세계 2~3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회장은 어떻게 꿈을 실현했을까? 비결은 1993년 시작된 신경영이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로 알려진 바로 그 신경영 말이다. 1등, 말이야 쉽다. 하지만 동네에서 1등 하기도 쉽지 않은데 세계 1등이라니.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이 있었다.
신경영의 핵심은 다 바꾸는 거다. 지금까지 통용되었던 조직의 패러다임을 다 바꾸는 거다. 한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조직이 가진 패러다임을 바꾸는 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해냈다. 부단히 노력한 결과다. 계열사 사장들과 임직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다.
출발점은 위기의식의 공유였다. 계기는 세계화와 시장개방이었다. 1993년 이 회장의 말이다. “보통 위기상황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국경 없는 경제전쟁 시대가 시작됐는데도 누구도 심각함을 모르고 있다. 전 세계가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 같은 후발 개도국이 추격해오고 있다.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
현명관 당시 비서실장의 설명이다. “당시 삼성에 그런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왜냐? 당시는 공급이 부족해 만들기만 하면 다 팔리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남보다 빠르게 많이 만들면 됐다. 그러니 경영방식도 양(量) 위주였다. 정부도 수입규제 정책으로 국내 기업을 지원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문호가 활짝 개방돼 같은 무대에서 같은 조건으로 외국의 일류 기업들과 경쟁해야 했다. 정부도 국내 기업을 도와줄 수 없다. 기업 대 기업 차원에서 기술과 품질, 가격, 마켓팅, 애프터 서비스 등 넓은 의미의 ‘질(質) 경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대로 변했다. 그런데도 과거의 자만심과 성공신화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안주하고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위기의식이었다.
현 실장에 따르면 이 회장은 그 이전부터 “바꿔야 한다”고 수없이 얘기했다. 하지만 마이동풍이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1987년 12월 회장에 취임하고 이듬해 제 2 창업을 선언하면서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고 위기의식을 갖자고 수없이 얘기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50년 동안 굳어진 체질이 너무도 단단했다”고 설파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변화란 늘 두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사장과 임직원들이 변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이 회장이 찾은 첫 번째 답이 위기의식의 공유였다. 현 실장은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가 시작됐다고 한다. 삼성이 대체 세계시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알면 충격을 느껴 위기의식을 공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삼성 제품 분해해 경쟁 제품과 비교
그날 저녁 이 회장의 질문이 쏟아졌다. “삼성 TV와 냉장고 등이 어디 전시돼 있던가? 판매점 중앙에 있던가, 구석에 진열돼 있던가?” “소니와 필립스 제품과 가격은 얼마나 차이나던가?” “점원은 어떤 제품을 사라고 추천하던가?” 등등이었다. 하긴 삼성 전자제품은 매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국내 1등인 삼성 제품이 세계 일류제품에 비해 참으로 초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현 실장은 “그게 삼성의 현위치라는 게 이 회장이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이튿날에도 계속됐다. 이 회장은 숙소의 연회장을 통째로 빌려 삼성과 경쟁 제품의 비교 전시회를 열었다. 완제품뿐 아니라 분해까지 해 회로와 배선, 부품 등을 볼 수 있게 했다. 이 회장은 사장단에게 질문했다. 분해된 TV를 보면서 이 회장은 “봐라. 소니 TV는 배선이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지 않나. 그런데 우리 것은 선들이 얽히고 설켜 있다”고 말했다.
또 리모컨을 들고 물었다. “리모컨의 여러 버튼 중 가장 많이 쓰는 건 뭔가?”라고. 누군가 온-오프 버튼이라 답했다. 이 회장은 기다렸다는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소니 리모컨의 온-오프 버튼은 사람이 손으로 잡으면 가장 작동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랑 소니가 고객을 생각하는 마인드가 그만큼 다르다는 증거다.”
6월 초에는 일부 임원들을 불러 “양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질을 중시하는 경영풍토를 정착시켜라, 제품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곧바로 ‘후쿠다 보고서’ 사건과 ‘세탁기 뚜껑 칼질 영상’ 사건이 터졌다. 후쿠다는 일본 인 이름으로, 이 회장이 영입한 일본의 디자인 전문가였다. 그는 삼성전자의 디자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보고서를 이 회장에게 전한 후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국내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자신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뚜껑 칼질 사건은 삼성의 사내방송인 SBC가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제작한 영상이었다. 삼성 세탁기 공장에서 뚜껑이 잘 맞지 않는 불량품이 발생하자 직원들이 뚜껑 부분을 면도칼로 깎아내는 장면이었다. 이 회장이 더 미뤄선 안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
6월 7일 이 회장은 주요 임원 200여 명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렀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 나온 그 회의였다. “당신들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나는 목숨을 건다”는 말도 나왔다. 이후 영국 런던, 일본 오사카와 후쿠오카를 거쳐 도쿄에서 마지막 간담회를 한 게 8월 4일, 장장 68일간의 신경영 회의가 열렸다.
현 실장의 말이다. “모두 1800여명이었다. 이만한 인원을 전세기에 태워 해외로 불러 회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체 세계의 어느 기업이 이런 일을 하겠는가. 국내가 아닌 해외로 불렀다는 건 이 회장이 이만저만한 결심을 한 게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진짜 놀랄 만한 충격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정리: 김영욱 기업과 제도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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