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순위 매기는 ‘보다 카운트 투표’ 땐 극단 정치 줄어든다
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그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어떤 안을 싫어하는지’를 말하는 비토(veto)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물론 비토 방식은 싫어한다는 의사 표현만 가능하고 좋아한다는 의사 표현이 안 된다는 정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어쨌든, 국민을 대표하여 정부를 이끌어갈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단순 다수결 방식에 크나큰 결함이 있어 국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최우수 선수, 보다 카운트 투표로 선발
국민들의 의사가 잘 반영되는 투표를 통해서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오래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도편추방(ostracism)과 같은 전 시민이 참여하는 투표가 시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학계에서 인정하는 투표 방식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의 시작은 18세기 프랑스 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왕과 귀족이 아닌 국민들의 국가가 세워졌으니 당시 프랑스의 학자들로서는 주인인 국민의 뜻을 모을 이상적인 투표 방식이 무엇인지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18세기 말 프랑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제안된 투표 방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가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라는 수학자가 제안한 ‘콩도르세 투표’(Condorcet voting)와 보다(Jean-Charles de Borda)라는 수학자가 제안한 ‘보다 카운트’(Borda count)이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어떤 후보를 싫어한다는 의사 표현을 못하는 단순 다수결의 단점을 해결하고자 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일단 콩도르세 투표는 모든 후보자를 놓고 한 번에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을 지양한다. 예를 들어 올림픽 권투 경기에서 참여한 선수들 수십 명을 링 위에 올려놓고 한 번에 경기를 시켜서 최종적으로 남은 선수에게 금메달을 주는 방식을 택한다면 어떻겠는가. 반드시 기량이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가 금메달을 받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가장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에워싸고 공격해서 일단 그 선수를 탈락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선수가 남아 있다면 자신이 금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처럼 떼로 몰려서 싸우게 만드는 경우에는 오히려 가장 강하고 뛰어난 선수가 먼저 탈락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투표도 마찬가지다. 어떤 후보가 뛰어나다고 하면 다른 모든 후보들은 가장 뛰어난 그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서 힘을 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이 원하지 않는 엉뚱한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그래서 올림픽 경기에서는 모든 권투 선수들이 1:1로 시합을 하도록 한다. 두 명이 경기를 해서 패한다면 그 결과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고, 승리한 선수가 더 강하다는 것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자인 콩도르세는 올림픽 권투 시합처럼 모든 후보들을 1:1로 맞붙여서 선거를 해 최종 승리자를 가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이런 콩도르세 투표가 시행된다면 정치인들은 왼쪽, 오른쪽, 그리고 중도의 다른 정치인들과 1:1로 붙어서 모두 이겨야 하므로 한쪽에 치우친 정책을 내걸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런 콩도르세 투표에는 ‘콩도르세 역설’(Condocet paradox)이라고 불리는 치명적인 결점이 존재한다. 다시 올림픽 권투 시합을 생각해 보자. A, B, 그리고 C라는 세 명의 권투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고 시합을 했는데 A와 B의 경기에서 B가 승리하고, B와 C의 경기에서 C가 승리하고, C와 A의 시합에서는 A가 승리한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금메달을 줄 것인가? 세 선수가 모두 1승 1패이므로 금·은·동을 가릴 길이 없는 것이다.
콩도르세 투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서 A, B, 그리고 C라는 세 후보가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콩도르세의 방식에 의해서 투표를 했더니 A와 B의 투표에서는 B후보가 승리하고, B와 C의 투표에서는 C가 승리하고, C와 A의 투표에서는 A가 승리한다면 당선자를 가릴 길이 없는 것이다. 만일 콩도르세 역설이 실현되면 선거에서 당선자를 가릴 수 없게 되므로 정치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콩도르세 투표 방식을 채택하는 국가나 조직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대학 학생 대표 선출할 때도 사용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 다수결제도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특히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극과 극으로 나뉘어 서로 타협하지 못하고 적대시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단순 다수결 투표 방식의 문제점이 존재한다고 본다. 단순 다수결에서 유권자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자 한 사람에게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어떤 후보를 모든 유권자들이 두 번째로 선호한다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이렇게 선거에서 두 번째로 선호되는 후보는 단순 다수결에서는 단 1표도 받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따라서 단순 다수결 하에서 정치인들은 어차피 자신을 1등으로 선호하지 않을 유권자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유권자가 자신을 2등으로 좋아하든, 아주 질색을 하면서 싫어하든 정치인에게는 똑같은 것이다. 자기를 찍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일부의 유권자들에게 극단적인 정책으로 호소하여 자신을 1등으로 찍어줄 유권자만 늘리는 정책을 펴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단순 다수결 방식의 투표 때문에 정치인들은 자신의 극렬 지지자들의 의견만 듣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된 것이라면 오히려 정치인들에게 동정이 간다.
단순 다수결 제도 하에서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다수에게 널리 사랑받기 보다는 소수에게 열정적으로 사랑받는 정치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8세기 또다른 프랑스의 수학자인 보다가 제안한 보다 카운트 투표 방식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보다 카운트 투표에서는 가장 선호하는 사람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후보들을 놓고 가장 선호하는 사람을 1위로 표시하고, 다음으로 선호하는 후보를 2위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투표하게 된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부터 가장 싫어하는 후보까지 순서를 매기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후보들의 수가 10명이라면 1위를 한 후보는 10점을 받고, 2위를 한 후보는 9점을 받으며 제일 싫어하는 10위를 한 후보는 1점을 받는 방식이다. 이렇게 모든 유권자들이 후보들에게 점수를 주고 그 점수를 합산하여 그 합이 가장 큰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이런 보다 카운트의 투표 방식에서는 1등을 하기 보다는 꼴등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일 모든 유권자들에게 2등을 한 후보가 있다면 평균 9점을 받아서 당선될 확률이 아주 높아질 것이다. 즉, 보다 카운트 제도에서는 정치인들은 극렬 지지 유권자에만 신경 쓰고 다른 유권자들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했다가는 당선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보다 카운트 방식을 사용하면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이 모든 국민들에게 골고루 호응 받을 수 있는 중도적인 화합적인 정책을 내세우게 될 것이다. 보기 싫고 억지스러운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적대적 정치인들은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보다 카운트는 많은 곳의 투표에서 사용되고 있다. 각종 스포츠에서 올해의 최우수 선수를 선발할 때 보다 카운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국 대학에서 학생 대표를 선출할 때에도 사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보다 카운트 방식의 투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수천만 명의 유권자들의 점수를 다 합산한다는 것은 몇 달이 걸릴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계산기를 두드리면 불과 1초도 안 되어서 모든 합산이 가능한 시대이므로 이런 다양하고 보다 합리적인 투표 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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