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가을날 강아지와 할머니의 밀당
2023. 10. 28. 00:04
볕 좋은 가을날에는 집집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고추든 깨든 콩이든 곡식을 말리곤 했다. 마침 한 농가에 들어섰을 때, 강아지가 할머니의 벗어놓은 고무신을 물고 내빼는 순간을 목격했다. 무관심하게 일만 하는 할머니에게 심술이 났나 보다. 할머니는 그제야 ‘복슬아~’ 부르며 구슬려 보지만 쉽게 돌아서지 않을 태세다. 온갖 곡식을 다 잘 말리는 할머니도 복슬강아지의 장난기를 말리긴 쉽지 않은 듯,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제풀에 지치면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물고 있는 흰 고무신이 그동안 고되고 바빴던 발걸음을 말해주는 듯 시커멓게 흙물이 들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논으로 밭으로 고무신이 닳도록 종종걸음을 쳤으리라. 곧 가을걷이가 끝나고 시꺼메진 고무신을 뽀얗게 닦아 댓돌 위에 사뿐히 올려놓으면 비로소 한 해 농사도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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