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권력과 ‘3위1체’ 마약, 영화와 세상을 중독시키다

2023. 10. 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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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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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안정적인 마피아 패밀리 돈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란도) 가문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순전히 마약 때문이었다. 비토 콜레오네는 지역 이권사업에 개입하고 광범위한 정관계 네트워크를 꾸려 이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하는데다 간간히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손을 대 부와 권력을 구축한 인물이다. 돈 비토 콜레오네는 자신의 패밀리에게 마약과 매춘사업은 철저하게 금지 해 왔다. 그들의 주력사업은 도박, 곧 카지노 운영이나 밀주 판매, 건설, 노동조합 쪽이다. 그런 그의 왕국에 편승해 새로운 큰 판을 짜자는 것이 프리랜서 조직의 두목인 솔로조(알 레티에리)이다. 솔로조는 콜레오네와는 경쟁관계인 탓타리아 패밀리와 손을 잡고 돈 콜레오네에게 마약 유통을 위해 그가 관리하는 막강한 정관계의 ‘길’을 터줄 것을 요청한다. 당연히 돈 콜레오네는 반대한다. 솔로조 일당은 돈 콜레오네를 제거하려 한다. 킬러들을 보내 뉴욕 뒷골목 청과상 노점에서 과일을 사던 그에게 총을 난사한다. ‘대부 1,2,3편’의 모든 이야기, 가문의 비극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마약 때문이다. 1972년 프랜시스 F. 코폴라가 만든, 영화 100년사 중 가장 위대한 영화에 꼽히는 ‘대부’ 시리즈의 초반 설정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우민호 감독 ‘마약왕’ 병든 사회 들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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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특히 액션영화 대다수의 소재는 마약과의 싸움을 그리거나 마약을 놓고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그건 마약이 그만큼 미국이나 서구 사회에 있어 크나 큰 먹구름과도 같은 존재이자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 오래된 병마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할리우드 영화는 마약으로 시작해 마약으로 끝난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연출하고 올리버 스톤이 각본을 쓴, 전설의 영화 ‘스카페이스’는 1984년작이지만 원래 이 마약왕의 이야기는 1932년 영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재벌이자 항공재벌인 하워드 휴즈가 제작하고(그의 생애는 마틴 스콜세지의 ‘에이비에이터’에 그려져 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의 감독 하워드 혹스가 만든 동명의 영화다. 원안의 내용은 악명 높은 갱스터 알 카포네의 이야기이다. 그는 얼굴(페이스)에 칼자국 상처(스카)가 있었으며 이탈리아 이민자로서 시카고에 둥지를 튼 희대의 조직범죄자였다. 그를 잡는 얘기가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가 만든 또 다른 영화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언터처블(1989)’이다.

원래의 얘기로 돌아가면 1984년작 ‘스카페이스’는 1932년 알 카포네의 이야기를 쿠바 난민 출신인 똘마니급 깡패 토니 몬타나(알 파치노)와 마니 리베라(스티븐 바우어)의 이야기로 바꿔 낸다. 이 둘은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연결되는 컬럼비아 마약상 소사 파벌까지 일소하며 막대한 돈과 권력을 쥐고 흥청대다가 파멸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토니는 처음에 마약을 공급하고 파는 데만 전념한다. 두목 프랭크로부터 뺏은 여자 엘비라(미셸 파이퍼)를 약쟁이라며 비아냥댈 만큼 스스로는 마약을 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러나 그 역시 범죄의 권력이 주는 공포로 인해 중독자가 된다. 그가 벌이는 마지막 총격 혈투는 순전히 약기운때문이다.

‘스카페이스’의 마지막 명장면을 다소 베낀 것 같은, 최소한 그걸 연상케 하는 영화가 2017년 우민호 감독이 만든 ‘마약왕’이다. 영화 속에서 마약반 과장(이성민)은 누군가로부터 룸살롱에서 거나한 접대를 받으면서 “약 파는 놈이 약에 손을 대는 순간 끝인기라”고 얘기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이두삼(송강호)이 특이했던 건 70년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대만에서 원료를 사와서는 국내에서 직접 필로폰을 대량으로 생산한 후 이를 일본 등지에 역수출을 했다는 점이고 그것을 위해 일본의 야쿠자, 한국의 안기부와도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 입지전적의 과정을 통해 이두삼은 돈과 권력을 쥔다. 여자도 생긴다. 하지만 마지막은 역시 약이 문제가 된다. 과거의 그 수사관이 예언한 대로 이두삼은 약에 취해 파멸한다. 그 과정은 꽤나 처절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다. 영화 ‘마약왕’은 그걸 마치 1970년대에 급발진한 한국의 산업자본주의가 그 미친 듯한 속도감으로 인해 우리사회 내에 어떤 병폐와 부작용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상징처럼 그려냈다. 마약과 돈, 권력은 동의이음어다. 한국사회는 이때부터 병들고 중독됐다고 영화는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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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 얼마나 늘 부패한 정치인과 위험한 정치 시스템에 편승해 더러운 전쟁을 유발하는 가를 보여 준 영화가 바로 톰 크루즈 주연의 2017년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이다. ‘제이슨 본’ 시리즈의 제작자 출신인 덕 라이먼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레이건 시대를 정조준하는 역사의식을 앞세운다.

유약한 지미 카터 민주당 정권을 누르고 강한 보수주의 정부의 기치를 내세우며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임기 초반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때는 영부인인 낸시 레이건까지 동원해 감성적 메시지로 호소했는 바, 미국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모든 국민이 반 마약과의 싸움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레이건의 지지율은 치솟는다. 문제는 이런 레이건 정권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미국 내부에 어마어마한 양의 코카인을 들어 오게 하는 비행 루트와 유통시장을 새로 연 장본인이었다는 것이다. 마약 범죄는 레이건의 80년대 때 오히려 급증했으며 이 전 과정은 일명 이란-콘트라 사건을 통해 폭로됐다.

로버트 다우니 Jr. 마약 중독서 벗어나

미국은 당시 적대적 회교 근본주의 국가였던 이란을 상대로 무기밀매를 통해 막대한 돈을 챙기고 여기서의 수익으로 니카라과 좌파 정권인 다니엘 오르테가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다. 문제는 이 콘트라 반군과의 거래 과정에서 컬럼비아의 악명높은 메데인 카르텔의 마약들이 집중적으로 미 전역에 살포됐다는 점이다. 이란과의 무기 밀매 과정의 핵심에는 올리버 노쓰 중령이 중개상으로 활약했는 바, 이 노쓰 중령 스캔들, 그리고 콘트라 사건 등등이 연결되면서 레이건은 탄핵의 소용돌이에까지 빠져들게 된다. 미국 사법부는 이 전 과정의 진실을 은폐했다.

씨네파일
톰 크루즈의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는 메데인 카르텔과 CIA를 오가며 콘트라 반군에게 무기를 날라주고 또 오는 길에는 마약을 실어 왔던 비행기 조종사 베리 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직 TWA 기장이었던 베리는 극단적인 시대에 가장 극단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레이건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 시나리오가 사실은, 60년대로부터 이어져 온 히피 저항의 이데올로기와 그 문화적, 예술적 주창자들을 억압하고 당시 확장되고 있었던 흑인과 히스패닉 커뮤니티에 마약범죄자의 이미지를 씌워 철저하게 통제하려 했던 의도가 아니었느냐는 의혹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가 ‘아메리칸 메이드’를 보면서 떠올려지려면 그 전후사에 대한 인식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현대 마약전후사의 인식인 셈이다.

미국사회에 마약이 얼마나 일상화돼 있으며 일반인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가는 그간 무수히 많은 영화가 두려울 만큼 자세하게 언급해 왔다. 미국은 중독사회다. 그걸 주도하는 계층은 이제 빈민, 서민 같은 사회적 루저들이 아니라 지도급 인사들, 중산층 부유층 유명인들이다. 한때 유명했던 연예계 스타가 추락한 인기와 한가한 일상의 권태, 그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도 왕왕 벌어진다. 그런 모습을 다소 애잔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그린 것이 성격파 배우 샘 엘리엇이 주연한 2017년 영화 ‘더 히어로’다. 주인공 리 헤이든은 젊은 여자친구 샬롯(로라 프레폰)과 자신에게 공로상을 주는 시상식장에 가면서도 어마어마하게 약을 해댄다. 레이디 가가 주연의 2018년 영화 ‘스타 이즈 본’에서 한때 톱스타였던 잭슨(브래들리 쿠퍼)은 자신이 키운 무명가수 엘리가 자신보다 더 인기를 모으자 막무가내로 마약에 빠진다.

현대사회는 중독사회다. 중독에는 여러 요인이 있으며 마약은 그중 하나고, 따라서 마약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약 하나만이 아니라 중독이라는 증세 자체를 치료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 스타인 로버트 다우니 Jr. 는 마약중독자의 오명에서 벗어나 인기를 되찾았다. 마약은 전쟁의 대상이지만 이처럼 그 전제는 치료 시스템을 동시에 가동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라고 많은 영화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와 세상의 중간 지대에 마약의 역사라는 치부가 노정돼 있다. 역사를 통해 배우고 영화를 통해 기억해야 할 일들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 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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