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환경의 공존, 지속가능한 사회 위한 디자인

서정민 2023. 10.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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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어워드 2023
‘서울디자인어워드 2023’ 대상 수상작 ‘암포라’. 태양광 발전과 공기 중 습기를 이용해 안전하고 신선한 식수를 만드는 제품이다.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패션·제품·건축·도시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 ‘디자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삶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뭘까. 혹여 우리는 디자인의 범주를 ‘조형적 아름다움’으로만 한정시켜 두고 더 중요한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25일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아트홀 1관에서 진행된 ‘서울디자인어워드 2023’ 시상식은 이런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서울시가 후원하고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주관하는 ‘서울디자인어워드’는 디자인의 선한 영향력과 가치 확산을 표방하며 2019년 시작한 ‘휴먼시티디자인어워드’의 새로운 이름으로, 일상의 문제해결을 위해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결방안을 제시한 프로젝트에 수여하는 국제 디자인상이다.

올해부터는 기존 주제였던 ‘도시의 변화’에서 범위를 넓혀 유네스코의 지속 가능발전 목표 달성에 기여하고자 ‘사람과 사회, 환경의 조화로운 관계를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일상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췄다. 3월부터 6월까지 디지털·제품·패션·건축 등 분야에 상관없이 5년 이내에 실현된 디자인 프로젝트와 실현 방안이 도출된 연구사례를 공모한 결과 46개국에서 총 356개의 작품이 접수됐다. 다국적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15명과 자문위원 13명의 심사를 거쳐 총 22개의 수상작이 선정됐고, 그중 10개 작품이 대상 후보에 올랐다.

‘일상의 문제 해결 프로젝트’에 초점

최우수 창의·혁신상을 수상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실의 변신’.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올해의 심사기준은 ‘지속 가능하고 조화로운 일상을 위한 공공의 디자인 문제를 다루는가?’ ‘인류와 환경이 공존하는 문화와 문명의 비전 제시에 기여하는가?’ ‘참여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적으로 확장·공유될 만한 파급효과가 있는가?’였다.

심사위원장 세브라 데비스(영국 문화원 건축 디자인 및 패션부 부장)는 “좋은 디자인이란 환경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한다”며 “심사위원장으로서 작은 규모의 물체부터 도시 규모까지 폭넓은 출품작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디자인의 미래는 물론 인간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깊이 생각한 혁신적 디자인을 보여준 것에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서울디자인어워드 2023’ 대상은 튀니지 에어 디자인 스튜디오의 주헤어 벤 재닛이 디자인한 ‘암포라’가 수상했다. 암포라는 태양광 발전과 공기 중 습기를 이용해 안전한 식수를 만드는 제품이다.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도 아침이면 텐트 지붕에 이슬이 맺히는 현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재닛은 “하루 평균 30리터의 신선한 물을 생산할 수 있는데, 이는 매일 15~20명이 마실 수 있는 양”이라며 “북아프리카 지역의 20%는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황으로 암포라는 이들의 식수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최우수 참여·협력상을 받은 ‘앙실라 굴 양식 파빌리온’.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암포라’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올리브 오일이나 물·음식 등을 운반하고 보관할 때 사용했던 항아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재닛은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모던한 디자인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하지만 나는 인류가 오랫동안 써온 전통제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며 “아이들과 주말시장에서 사온 작은 암포라 장식물을 보고 이번 ‘물’ 프로젝트와 딱 맞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했다.

재닛이 말하는 암포라의 또 다른 가치는 친환경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흰색 항아리처럼 생긴 외부 틀은 폐그물에서 얻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재닛은 “연간 최대 250㎏의 플라스틱 폐기물과 2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수치는 암포라 제작과정뿐 아니라, 암포라를 사용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영향을 말한다. 이동형 정수기처럼 암포라를 현장에 두고 그때그때 컵에 직접 물을 받아 마시면 플라스틱 생수병 사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생수병을 생산하고 옮길 때 발생하는 탄소발자국도 줄일 수 있다. 암포라 한 대의 비용은 약 4000달러(약 543만원)인데, 실제로 이를 테스트용으로 구입한 곳들 중에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학교뿐 아니라 5성급 호텔과 대형 기업도 있다. 숙박고객과 직원들에게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동시에 ESG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 때문이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 상을 수상한 3팀 중 최우수 창의·혁신상을 수상한 작품은 태국의 디자인 그룹 크리에이티브 크루가 제안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실의 변신’이다. 이 디자인이 실현된 곳은 태국 파타야에 위치한 한 맹인학교의 도서관으로, 크리에이티브 크루는 이 낡은 도서관을 시각장애 아동들이 다감각 체험을 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학습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촉각이 중요한 아이들을 위해 벽면에 구멍을 뚫고 숫자와 글자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물들의 다양한 모양과 질감을 반영한 모형핀을 끼워서 점자 이전에 손으로 학습할 수 있는 조기교육 환경을 구현했다.

DDP에 전시, 시민상 선정 투표도

대상 수상작 ‘암포라’를 디자인한 주헤어 벤 재닛.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최우수 참여·협력상은 태국의 챗 건축이 출품한 ‘앙실라 굴 양식 파빌리온’이 받았다. 태국의 작은 어촌 마을 앙실라에 설치된 굴 양식 파빌리온은 굴 양식을 테마로 하는 새로운 생태관광 인프라로, 인근 지역 개발과 수익성 감소로 침체된 앙실라 해산물 양식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디자인됐다. 하부에선 굴 양식을, 상부에선 관광객을 대상으로 시식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파빌리온은 현지 대나무를 이용하고, 폐차된 차량의 안전벨트를 재사용해 대나무를 엮고, 저렴한 농업용 빨간 방수포를 활용해 그늘막을 만들었다.

최우수 영감·영향력 수상작으로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안전한 물 운반과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디자인된 ‘제리캔 백’이 선정됐다. 아프리카 농촌 지역 아이들은 무거운 물통(제리캔)을 들고 평균 2시간 이상 위험한 길을 걸어 다닌다. 제리백 주식회사는 우간다 캄팔라에 2014년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가볍고 튼튼한 방수 소재를 활용해 아이들이 매기에 적당한 10㎏ 용량의 제리캔 백을 디자인했다. 자동차 운전자들 눈에 잘 띄게 블루 바탕에 옐로 반사판을 단 것이 특징이다. 옐로 반사판에는 ‘천천히(SLOW DOWN)’라고 적혀 있다. 제리백 주식회사는 지금까지 1만5000개의 배낭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선물했고, ‘1개 사면 1개 기부’ 글로벌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최우수 영감·영향력 수상작 ‘제리캔 백’.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안전한 물 운반과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디자인됐다.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한편 9월 28일부터 10월 23일까지 대상 후보 10개 프로젝트를 DDP 디자인랩 1층 D-숲에 전시하면서 시민상 선정을 위한 투표도 진행했다. 시민들은 설치된 전시를 보고 OR코드를 활용해 투표하거나 서울디자인어워드 홈페이지에 접속해 온라인으로 투표했다. 그 결과 2개의 시민상이 선정됐다.

‘서울디자인어워드’는 대상 1팀에게 상금 5000만원, 베스트 오브 베스트 3팀에는 상금 1500만원이 각각 지급된다. 그밖에 우수상, 시민상, 리서치상, 올해의 이슈상에도 각각 상금 500만원이 지급된다. 수상작들은 서울디자인어워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디자인재단의 이경돈 대표이사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많은 어워드들 중에서도 서울디자인어워드가 특별한 점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창의적인 솔루션으로 기여한 디자이너들이 받는 ‘인정’이자 ‘응원’이라는 점”이라며 “앞으로도 서울디자인어워드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디자인의 가치를 알리는 선한 영향력의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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