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손효림]공연표 싹쓸이, 영혼의 먹거리 망가뜨리는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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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티켓 예매를 해 봤어요. (표가 다 팔리지 않아) 제가 여러 장 사게 되면 지인들 나눠 주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당혹스럽더라고요."
그가 2019년 후 4년 만에 연 콘서트는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총 6회 공연 티켓 6만여 장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표가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정작 김동률 본인은 자신의 티켓 파워를 잘 몰랐던 걸까.
팬데믹 기간 공연을 보지 못했던 욕구가 폭발하면서 암표 문제는 더 심화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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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 얻으려는 간절함 악용… 강력 단속해야
가수 김동률(49)이 말했다. 그가 2019년 후 4년 만에 연 콘서트는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총 6회 공연 티켓 6만여 장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곧이어 온라인 사이트에는 웃돈을 얹은 표를 판다는 제안이 속속 올라왔다. 김동률은 서울 송파구 KSPO 돔(옛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14일 열린 콘서트에서 “티켓 구하기 어려우셨죠?”라고 운을 뗀 후 자기 경험을 이야기한 것. 객석에서 큰 웃음이 터졌다. 표가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정작 김동률 본인은 자신의 티켓 파워를 잘 몰랐던 걸까. 그는 “앞으로는 주제 파악(?)을 하겠다”고 농담처럼 말하며 “힘들게 해드려 죄송하다. 불편을 줄이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콘서트, 뮤지컬 등의 표를 싹쓸이한 뒤 적게는 수만 원, 많게는 수십만 원을 얹어 되파는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팬데믹 기간 공연을 보지 못했던 욕구가 폭발하면서 암표 문제는 더 심화되는 상황이다. 가수 임영웅(32)이 27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여는 콘서트의 경우 16만5000원짜리 표가 60만 원에 거래됐다. 나란히 붙은 두 좌석을 555만 원에 판다고 올린 사례도 알려져 경악했다.
기자가 김동률 콘서트에 갈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 친구가 가족을 총동원해 ‘피케팅’(피가 튈 정도로 치열한 티케팅)에 나섰고, 표 세 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가족 중 피케팅 내공을 쌓아 이른바 ‘금손’이 된 이가 있었던 것. 친구는 환호하며 이를 알렸다. 아, 하루하루 살기도 만만찮은데 콘서트 티켓 사는 것마저 전쟁을 치러야 하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공연 기획사와 판매사는 암표를 걸러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임영웅은 불법 거래가 의심되는 예매를 취소시켰다. 아이유(30)는 티켓 부정 거래를 신고하면 해당 티켓을 주는 ‘암행어사 포상’을 도입했다. 티켓을 수령할 때 판매처 ID를 비롯해 신분증,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표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보니 암표상에게 ID와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아옮’(아이디 옮기기)까지 확산됐다. 개인정보를 넘기면 보이스피싱, 해킹에 이용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암표를 팔면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처벌을 한다. 처벌 수위가 약한 데다 오프라인 거래만 해당된다. 거래 대부분은 온라인에서 이뤄지기에 사실상 의미가 없다. 내년 3월부터는 입장권을 부정 판매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공연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하지만 적발하기가 쉽지 않아 공연계에서는 효과를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동률 콘서트가 끝난 후 공연장을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상기됐다. “오늘밤은 잠이 안 올 것 같아”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김동률이 “이제 술 먹고 전화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다”며 힘을 빼고 편안한 느낌으로 편곡한 ‘어덜트(성인) 버전’의 ‘취중진담’, 그가 직접 친 피아노 전주만으로도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 ‘기억의 습작’…. 푸르렀던 시절의 기억이 아스라하게 밀려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공연은 영혼의 먹거리임을. 사람들은 먹는 것에 ‘장난쳐’ 돈 버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공연을 보고파 하는 이들의 간절함을 빌미로 티켓을 쓸어 담아 이익을 챙기는 것 역시 식품을 이용한 범죄 못지않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필요한 이유다.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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