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규인]9년 전 세월호 참사가 한국 스포츠에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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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영(경영) 대표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 6개, 은 6개, 동메달 10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반면 수영과 함께 대표적인 기초 종목으로 꼽히는 육상은 10년 전 2167명에서 올해 2430명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이전까지 한국 수영 대표 선수들은 "국제 무대 경험이 부족해 아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번 대회 때는 이런 말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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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직접 원인’ 인(因)과 ‘간접 원인’ 연(緣)이 모두 있어야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우유는 특정한 온도와 습도가 맞을 때만 치즈로 변한다. 우유(인)만 있거나 발효 조건(연)만 있을 때는 치즈를 얻을 수 없다. 스포츠 역시 저변과 엘리트 시스템이라는 인과 연이 모두 갖춰졌을 때만 국제대회 성적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초등부 수영 등록 선수는 1596명이었다. 올해는 1.6배에 가까운 2484명으로 늘었다. 반면 수영과 함께 대표적인 기초 종목으로 꼽히는 육상은 10년 전 2167명에서 올해 2430명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수영처럼 ‘돈이 되지 않는’ 종목 선수가 이 정도 늘어났을 때는 어떤 ‘사건’이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초등부 수영 선수가 늘어난 건 세월호 참사(2014년) 이후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 ‘생존 수영’을 가르치는 학교가 늘었고, 그러면서 수영에 재능이 있는 선수를 조기에 발굴할 수 있게 된 거다.
때마침 대한수영연맹 집행부도 바뀌었다. 2021년부터 연맹을 이끌게 된 새 집행부는 엘리트 시스템 강화에 나섰다. 이전까지 한국 수영 대표 선수들은 “국제 무대 경험이 부족해 아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번 대회 때는 이런 말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정부에서 2019년 ‘풀뿌리 체육’ 담당인 국민생활체육회와 ‘엘리트 스포츠’를 관장하던 대한체육회를 통합한 것도 스포츠에 인과 연이 모두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 체육회 초대 수장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을 맡고 있던 이기흥 회장(68)이 뽑힌 건 기막힌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회장은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일본에 추월당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일본이 (2021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엘리트 스포츠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등 엘리트 스포츠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흔히 부카쓰(部活)라고 부르는 학교 방과 후 활동을 통해 남녀 학생 가리지 않고 운동하는 나라가 됐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생활 체육이 흔들리면 여학생이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남학생은 뛰지 말라고 해도 어떻게든 뛰어노는 존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여학생 비율(97.2%)이 가장 높은 나라다. 그러니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부 경기에서 한국이 금메달 13개를 따는 동안 일본이 1.7배 많은 22개를 가져간 건 우연이 아니다. 남자부 금메달 숫자는 한국과 일본이 26개로 똑같았다. 생활 체육 없는 ‘엘리트 스포츠 타령’은 그저 공염불일 뿐이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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