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흰 나방이 날갯짓할 때
날갯짓은 곧 날아오르려는 신호
꽃가루 옮기며 나비보다 많은 활동
공은 감춰져도 생태계 유지 안간힘
한 달 전 경남 창녕 화왕산 기슭에 디지털곤충학습관이 문을 열었다. 동화 작가이자 생태연구가인 조무호 관장이 폐교를 개조해서 혼자 일궈 나간 특별한 공간이다. 10월 하순이 되니 이곳에 문지기처럼 서 있는 100년 된 느티나무잎들도 불그스름하게 단풍이 들었다. 화단의 토종 맨드라미 군락은 줄기까지 물들어 꽃과 잎과 줄기가 온통 붉게 얽혀 있다. 모든 것들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 때 오직 하얗게 터질 듯 맺힌 목화송이는 이 곤충학습관의 희고 나지막한 건물과 단짝으로 생태철학을 다짐하는 결기처럼 보인다.
예이츠의 이 시 구절은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도 인용된다. 예의 바른 이방인 사진작가인 로버트에게 뜻밖의 사랑을 느끼게 된 시골 농장의 정숙한 안주인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에게 이런 쪽지를 남긴다. “흰 나방이 날갯짓을 할 때 저녁 식사를 또 하고 싶거든 일을 마치고 오늘 저녁에 오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그녀가 한밤중에 트럭을 몰고 달려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붙여두고 온 이 쪽지는 그녀의 일생을 폭풍처럼 흔들고 간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흰 나방의 날갯짓”이 한 여성의 감춰진 열정을 흔들었고, 생전에는 이 사랑을 포기하지만 죽어서는 로버트를 택하는 것으로 자신의 유품에 메모를 남긴다.
나비와 나방은 나비목에 속하는 한 식구이면서 두 종류의 곤충이다. 나방에 비해 나비는 숱한 시 속에서 아름답게 묘사되며 신비스러운 대상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왜 이 학습관의 조 관장은 나비보다 나방에 매료되었을까. 몇 가지 연구 근거가 있지만 필자는 나방의 날개 무늬에 들어있는 다양한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는 문학적 근거에 공감했다. 우선 나방의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그들의 무늬가 보인다. 금빛가지나방, 산왕물결나방, 구름무늬밤나방, 네눈박이산누에나방…. 이름만으로도 그려지는 이들의 날개 무늬는 각자 삶의 무늬들이 아닐까.
나방은 주로 밤에 꽃가루받이한다. 그래서 낮에 활동하는 나비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일을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공이 감춰진다. 마치 조 관장이 20년간 밤잠을 설치며 기록한 자료들과 같다. 70년 동안 한국 곤충학자들이 기록한 나방은 3700종인데, 조 관장이 단독으로 기록한 나방은 8000종이나 된다고 한다. 산속 텐트에서 나방과 동거한 조 관장의 생활이 그러했듯, 부질없어 보이는 흰 나방의 날갯짓이야말로 부지런한 매개 역할의 시작인 것이다. 한밤중 나방의 이 날갯짓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안간힘이 아니던가.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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