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

기자 2023. 10. 2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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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이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점차 힘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다. 과연 세상은 점점 나빠져 가는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옛날이 좋았고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며 요즘 것들은 예의없다는 결론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선을 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에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숨어 있다. 선이란 사람들 간에 합의된 사회적 규칙이다. 선을 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의미다.

사회적 약속에 대한 기존의 합의가 깨어지는 주된 이유는 바로 다양성의 증가다.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해 왔다. 다른 나라들이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겪은 일들이 한국에서는 고작 수십 년 안쪽에 일어났다. 그동안 정치적으로는 왕조시대에서 일제강점기, 권위주의 독재 시절을 지나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경제적으로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시대,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다양성의 증가는 문화의 개인주의화를 가져온다. 문화의 변화를 유발하는 선행요인들을 연구해 온 심리학자 트리안디스는 개인주의적 경향을 촉진하는 조건으로 사회의 경제력, 풍부한 자원, 산업-정보화 사회와 함께 문화적 복잡성을 꼽았다. 문화적으로 복잡하다는 것은 다양한 규범 체계가 공존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한국인들은 비교적 단일한 규범체계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격동의 현대사는 서로 다른 가치와 생활 패턴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사회의 다양성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살아온 시대와 그 시대에 필요한 가치들이 다르다보니 서로의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분위기를 개인주의 문화라 한다. 한국사회는 빠른 속도로 개인주의화되는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은 꽤나 집단주의적인 문화도 갖고 있다. 집단주의란 개인이 어떤 집단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두드러지는 문화를 말한다. 트리안디스에 따르면 집단주의는 개개인이 자신의 힘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워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야 했던 조건에서 나타난다. 과거 농경사회였고 잦은 외침을 겪었던, 지금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고 뚜렷한 외부의 적이 존재하고 있는 한국은 집단주의적 경향성 역시 강하게 나타나는 나라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날로 개인주의화되어가는 요즘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스스로의 기준으로 행동하는 요즘 사람들의 행동이 과거에 비해 이기적인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집단의 규범과 개인적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개인적 가치를 우선하는 모습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데 개인주의는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한편, 개인주의를 신봉하는 이들도 일부 사람들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집단주의를 개인의 개성을 짓밟고 권리를 무시하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집단주의에 대한 오해다. 집단을 위해 개인이 무시되어도 좋다는 생각은 전체주의지 집단주의가 아니다. 집단주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나의 행동을 하기 전에 다른 이들을 고려하는 것이 내 개성과 권리를 무시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사회에 다양성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다양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선택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의미이고, 그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저마다의 기준과 원칙이 중요해지고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여러 사람에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많은 일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선을 넘는’ 이들이 많아지는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성들을 갑자기 받아들이기엔 변화들이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왕조시대의 신민들과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이 같은 선거에서 투표를 하고, 해 뜰 때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던 산업화 시대의 역군들과 개인의 삶과 워라밸을 중시하는 청년들이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

우리는 너무나 다른 시대를 살아왔고 그 결과 서로 다른 가치관들을 갖게 되었다. 그럴수록 내 생각만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옳은 가치란 없다. 누군가가 ‘선을 넘는다’고 판단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한민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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