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주말 당직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잡은펼쳐보임방(기획전시실) 빔프로젝터 전원이 꺼져 영상 작품 재생이 안 된다는 연락을 받고 전시실로 향했다. 빔프로젝터 리모컨을 들고 작품 앞에 서자 관람을 하던 어린이들이 우르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조금 있으면 여기 뭔가 나타날 거예요.” “뭐가 나와요?” “뭘까요? 같이 볼래요?” 여러 동물이 뛰노는 영상이 재생되자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우와” 탄성을 질렀다. 나는 마법사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함께 쭈그려 앉아 영상이 재생되길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이들과 내가 무슨 사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모르는 사이라기엔 알게 되었고 안다고 하기엔 모른다. 직원과 관람객, 성인과 어린이 ….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일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이미 만났던 사이일 수도 있다. 나의 주말 오후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어린이들과의 관계를 ‘난잡(亂雜)하다’고 말하고 싶다.
영국의 학술단체 ‘더 케어 컬렉티브’가 지은 <돌봄선언>은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제 체제가 망친, 코로나19로 확연히 드러난 사회적 불평등과 돌봄의 문제를 비판하며 ‘난잡한 돌봄promiscuous care’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promiscuous’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성생활이) 문란한’이고 두 번째 의미는 ‘(별생각 없이) 이것저것 되는 대로의’이다. 돌봄이 어떻게 난잡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난잡함이란 더 많은 돌봄을 확장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곧 사회 전체가 서로를 돌보는,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며 인간, 비인간의 구분도 없는 모두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돌봄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있는 큰 거미줄도 한 걸음 더 물러서서 보면 그 구조가 한눈에 보인다. 난잡한 돌봄은 거미줄보다도 촘촘하게, 하지만 체계적이지 않게, 한눈에 보이지도 않고, 너와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이 어수선하고 문란하게 우리 모두를 연결한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2022년 10월29일 늦은 밤, SNS에 올라오는 글과 뉴스 속보로 이태원에서 벌어진 일을 알았고, 서울에 사는 친구들을 걱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 지역 유가족을 만났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태원 참사는 그 공간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부산 지역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5·18민주화 운동 유가족,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할 때 다시 깨달았다. 그 시간만의 일이 아님을. 피해자와 생존자 중에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없다고 여겼던 생각은 깨지고 우리 모두는 난잡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는 이 지면(경향신문 8월26일자 ‘시선’)을 통해 아빠와의 이별을 나와 난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많은 존재들에게 위로받았다. 왈칵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슬퍼하고 즐기고 떠들며 지낸다. 정호승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그리워하는지 알 수 없으나 삶과 죽음도 가를 수 없이 난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서로를 돌보는 것에는 엄숙한 슬픔만이 있지 않다. 일상 속에서, 웃음 속에서, 마주 잡은 손에서, 떠들썩한 축제 속에서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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