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어 보이지만 아름다운’ 시의 생명력[책과 책 사이]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아서라, 죽은 이는 다시 부르는 게 아니야//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중에서)
새로 문학 담당을 맡은 이후로 놀랐던 건 시집의 세계였다. 짧은 책조차 읽지 않고 유튜브로 보는 세상에, 시집은 생각보다 많이 출간됐다. 누가 사볼지 궁금했다. 출판업계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 책은 첫번째 인쇄할 때 2000부를 찍지만 시집은 1000부로 줄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하고 인기 있는 시인이 아닌 이상 그마저도 다 팔기 쉽지 않다고 했다.
장석주가 시인 29명의 시를 분석하고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평론집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을 냈다. “좋은 시는 지층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 “시를 쓰는 일은 개를 목욕시키는 일, 운동장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일, 심심함에 못 견뎌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는 일들과는 다르다. 그렇건만 시는 무위에 헌신하는 일, 아무 쓸모가 없는 아름다움을 구하는 일이다.”
지난 주말 대형서점에서 한 출판사의 시집 시리즈를 전시해둔 코너를 봤다. 시집의 표지는 심플하고, 색감은 강렬했다. 시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표지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일인가 싶었다.
이번주 신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표지도 흰색의 단일 컬러다. 시집 표지를 카메라에 담아 인스타에 올리기에 딱 좋은 구도라고 생각했다. 내심 누가 살까도 싶었다.
한참 지켜봤다. 시집을 집어든 한 명을 마주했다. 10대쯤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참고서를 든 그의 친구는 “또 시집이야?”라고 했다. 다행이다. 또 시집이어서.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쓸모없는 아름다움’도 필요한 시간이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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