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이주민·모범적인 이주민을 구분하려는 사회[그림책]
지운, 지워지지 않는
엘리자베스 파트리지 지음·로런 타마키 그림
강효원 옮김 | 너머학교 | 132쪽 | 2만4000원
1941년 12월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한 직후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결혼사진을 찍던 사진가 도요 미야타케는 영문 모른 채 정부 요원들에게 끌려갔다. 일본계 은행가, 성직자, 기자,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이튿날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미국 정부는 자국 내 일본계 이민자들이 간첩은 아닐지 의심했다. 그들의 라디오, 카메라를 압수했고, 은행 계좌를 동결했고, 통행 및 여행 금지 조치를 내렸다. 미국 내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들은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기모노, 서예작품, 일본책을 꺼내 불태웠다. 소용없었다. 이듬해 2월19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계 이민자 12만명 이상을 ‘대피’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대피’란 이들을 특정 시설에 ‘억류’한다는 뜻이었다. 미국에 이민 왔지만 시민권은 얻지 못한 ‘이세이’, 그들의 자녀로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얻은 ‘니세이’는 막사, 마구간, 창고에서 지푸라기 넣은 천 자루를 매트리스 삼아 살아야 했다. 이들의 ‘대피’는 전쟁이 끝나갈 때까지 계속됐다.
<지운, 지워지지 않는>(원제 Seen And Unseen)은 이 야만적·인종주의적·반헌법적·반민주주의적 정책의 실상을 그렸다. 특히 당시 상황을 촬영한 도로시아 랭·도요 미야타케·앤설 애덤스의 사진들을 함께 배치해 사태에 대한 다층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당국은 검거 및 강제 이주 과정이 얼마나 인도적이고 질서정연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랭에게 사진을 의뢰했지만, 랭이 찍어 제출한 사진엔 수용자들이 처한 끔찍한 상황이 담겨 있었다. 수감 당사자인 도요 미야타케는 밀반입한 렌즈에 카메라 몸체를 조립해 내부의 열악함을 담았다. 애덤스의 시선은 앞의 둘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수용소를 둘러싼 광활한 사막과 산을 장엄하게 담았고, 막사를 아늑한 방갈로처럼 찍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낯선 사람들을 전형화해 ‘모범적인 소수자’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이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현대사회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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