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성별로 뭉뚱그려지던 존재, 언어로 비로소 ‘나’를 찾다[책과 삶]
언어와 존재
퀴브라 귀뮈샤이 지음 | 강영옥 옮김
시프 | 320쪽 | 1만8800원
퀴브라 귀뮈샤이는 독일의 언론인이다. 함부르크에서 튀르키예인 노동자의 손녀로 태어났다. 그는 4가지 이상의 언어를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다. 튀르키예어, 독일어, 아랍어, 영어다. 그는 장소와 때에 따라 다른 언어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어떤 언어를 쓰든, 그는 ‘독일에 사는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이라는 겉모습으로 먼저 평가됐다. 언어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다. 하지만 그는 여러 언어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 안에서 온전히 그 자신으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없었다.
‘야카모즈(yakamoz)’는 물 위에 비친 달빛을 뜻하는 튀르키예어다. 저자는 이 단어를 알고 난 뒤 밤바다를 산책할 때 빛나는 달빛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언어를 알게 된다는 건 이렇게 원래 존재했지만 ‘나’가 인지하지 못했던 세계에 대해 알게 된다는 뜻이다. 책의 첫 장에 나오는 ‘야카모즈’ 일화는 아름답지만, 다음 장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은 주로 언어가 다양한 인간, 부조리한 사회와 결합됐을 때 부딪히는 한계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언어와 존재>에서 ‘누가 어떤 언어를 쓰는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자와 서술되는 자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싶어 애썼던 기록들이다. 저자는 과거 한 일간지에 칼럼을 쓴 뒤 협박 편지를 받았다. 자신을 ‘러시아계 독일인’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저자 같은 ‘독일에 사는 튀르키예인’들보다 자신이 어떻게 독일인에 더 가까운지 설명한 뒤 저자를 죽이겠다고 썼다. 반년 뒤 저자는 사랑에 관한 칼럼을 쓴 뒤, 다시 이 남자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이번에는 사과를 하는 내용이었다. 이 남자는 이번 글을 통해 귀뮈샤이가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비인간화됐던 추상적인 존재가 언어를 통해 인간의 얼굴을 가지자, 증오가 벗겨졌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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