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무도 책임 안 진 이태원 참사 1년, 이런 정부 없었다

2023. 10. 2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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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 기자회견에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시간은 흘렀지만 생존자들과 유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비탈진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이 사망한 그 순간에 멈춰 있다. 진상규명도, 처벌도,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도 없는 가운데 치유와 회복은 멀기만 하다. 대규모 재난을 예방해 시민을 보호하는 데 태만했던 정부가 공동체의 신뢰를 훼손하면서까지 책임을 회피하면서 참사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된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참사 이후 정부의 첫 조치였어야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감사원은 늑장 부리다가 최근에서야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전 정권의 정책을 감사하는 데는 그토록 기민하던 감사원의 태도에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진실의 공백 속에 책임 소재는 증발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는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업무태만을 은폐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보석으로 풀려나 업무에 복귀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최근 인사에서 유임된 것은 이 참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드러낸다. 1심 재판에서 용산경찰서·용산구청 관계자들은 이태원에 몰린 인파 관리가 왜 자신들의 책임이냐며 윗선에 떠넘기느라 바쁘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런 몰염치는 본 적이 없다. 뼈아픈 반성 없이 제대로 된 방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정부가 최근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인파관리시스템’ 시범운용에 나섰으나 근본대책이 못 된다. 이태원 참사가 어디 기관끼리 소통할 수단이 없어 벌어진 일이던가.

이태원 참사는 한국 사회의 존재 방식을 묻는다. 압축 성장과 동시에 자라난 생명경시 풍조와 안전불감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피해 등 후진국형 사회적 재난의 반복을 막기 위해 ‘사람의 안전권’을 명시한 생명안전기본법이 2020년 발의된 이유다. 정파를 떠나 우리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참사와 마주하기를 꺼리는 정부와 여당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추도까지도 정치공세로 치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로 예정된 참사 1주기 시민 추모대회가 야당의 정치집회 성격이 강하다며 불참하겠다고 한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장에 달려가는 정성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의 아픔을 달래는 데는 왜 발휘되지 않는가. “옆자리를 비워두겠다”는 유가족들의 초대를 윤 대통령은 거절하지 않길 바란다.

정치권은 법사위에 계류 중인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특별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줄 것을 당부한다. 국민의힘은 법안 처리에 협조해야 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딸을 잃은 어느 유족은 지금도 매일 저녁 6시만 되면 생전 습관처럼 딸 전화번호 버튼을 누른다고 한다. ‘정부의 부재’로 가족을 잃은 국민의 눈물조차 닦아주지 못한다면, 그건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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