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할버슈타트 단 하루의 공습…폐허가 된 도시, 무너진 건 건물만이 아니었다[인스피아]

김지원 기자 2023. 10. 2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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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버슈타트 공습’의 메시지

‘가해국’ 독일에 미 일제히 공습…폭격에 ‘항복 기회’ 갖지 못하고 무력하게 휩쓸린 건 모두 ‘민간인’
‘당시 열세 살 소년’ 작가 클루게…‘희생자 2000명’ 뭉뚱그려진 숫자 아닌 구체적·개성적 삶과 현장 묘사
당연하게도 모두 똑같은 목숨…폐허된 땅서 사라진 건 누구나처럼 놀고 일하고 친구 만나는 ‘사람의 삶들’
1945년 4월8일 연합군은 독일 국민의 사기 저하를 목적으로 30분 동안 500t이 넘는 폭탄을 떨어뜨렸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독일 할버슈타트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 dctp

지난 1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위치한 ‘알아흘리 병원’에 폭탄이 떨어져 민간인 최소 500명이 사망했습니다. 그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폭격 원인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대립해왔는데, 언론사와 분석가들이 여러 방송, CCTV 등을 꼼꼼하게 분석한 결과 가자지구 쪽에서 날아온 폭탄 파편이 병원에 떨어진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폭격 지역의 위성사진, 쏘아올려진 폭탄의 낙하 궤도를 다양한 관점에서 뜯어 분석한 외신 보도 영상들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깜깜한 하늘 위로 작은 별똥 같은 것이 반짝반짝하더니 금세 꼬리를 끌며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땅의 일부가 조금 밝아집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보면 ‘작은 불꽃’이지만 실제로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이기도 합니다. 23일 기준 양국에서는 64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물론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저는 ‘500명 사망’이라는 숫자가 도저히 실감나지 않아 한참 가만히 모니터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성사진들과 작은 불꽃이 ‘500명 사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좀처럼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조감도(鳥瞰圖)’란 새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풍경을 뜻하는데요. 통상 폭격이나 전쟁에 대해 보도, 논의할 때 주로 ‘하늘’로부터의 시선-조감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지역에 폭격이 ‘가해졌’고, 그래서 ‘몇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식으로요. 항공사진은 전체 도시 사진 가운데 무너진 폐허 지역을 조그맣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과연 폭격을 이런 식으로 ‘위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진상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땅에서 본 폭격: 1945년의 공습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이하 <할버슈타트 공습>)은 ‘폭격’에 대한 책입니다. 폭격을 ‘조감도’가 아닌 ‘땅 위’에서 바라본 책이죠.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945년 4월8일 하루 동안, 독일의 조용한 도시 할버슈타트에 살던 사람들과 마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사건 보고서’ 같은 책인데요. 이 책을 쓴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알렉산더 클루게는 실제로 1945년 폭격 당시 할버슈타트에 살고 있던 열세 살 소년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가족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운 좋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클루게

1945년 4월8일 일요일 오전, 전체 주민이 6만여명에 불과한 할버슈타트에 미 공군 일곱 부대는 일제히 공습을 시작합니다. 연합군 측은 ‘독일 국민들의 사기’를 철저히 꺾기 위해, 30분 동안 고폭탄 504t과 소이탄 50t을 쏟아부었습니다. 융단폭격의 결과 전체 희생자 수는 1600~2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도시 주요 시설 및 건물의 80%가 ‘모조리 날아가’버렸습니다. 클루게가 이 책을 쓴 게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기 위해 다시 할버슈타트로 돌아온 1976년이었는데, 폭격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시점에도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었죠. 불과 30분 만에, 고즈넉했던 마을은 문자 그대로 ‘폐허’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우선 <할버슈타트 공습> 초반부엔 마을 곳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떨어진 폭탄을 ‘맞닥뜨리게 된’ 장면들이 뚝뚝 끊어지듯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제가 직접 이 혼란스러운 폭격의 현장을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날의 폭격으로 인해 사라진 것은 ‘2000명’이라는 뭉뚱그려진 숫자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성적인 삶, 그리고 삶의 현장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재미난 영화를 상영하던 ‘카피톨’ 영화관에도 폭격이 가해졌는데요. 폭탄 하나가 정통으로 내리꽂혀 영화관 절반이 무너져내렸죠. 하지만 충격으로 내동댕이쳐진 매표소 직원 슈라더는 잠깐 어리둥절한 채 있다가, 다음 상영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청소를 시작합니다(물론 이어지는 폭격 때문에 그는 결국 영화관과 삽을 버려둔 채 도망가야 했습니다). “상영작 안내판이 ‘배추인지 무인지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 것을 보았다. 그녀는 공습 대비용 삽을 들고 달려들어서 그 잔해 더미를 14시 상영시간 전까지 청소하려고 했다.”

모든 파괴는 불과 30분 만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습 경보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었고요. 폭격이 워낙 재빠르고 ‘효율적’인 바람에 사람들은 온갖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결혼식날을 맞은 부부와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해봅니다. “햄, 버터, 직접 구운 소박한 케이크 두 개는 신부 측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리고 11시20분에 공습 경보가 울렸다. 웨이터가 말했다. 무조건 지하실로 내려가야 한다고.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 신부, 신랑, 신부 어머니, 상대편 어머니, 신부 어머니 자매 네 명 (…) 아이들 네 명이 거기에 있었다. 12분 후에 그들은 모두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나는 그들이 질식해서 곧바로 죽었기를 바랍니다, 라고 다음날 산더미 같은 잔해를 이리저리 뒤지던 신부 오빠가 말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최근 자신의 여덟 살 딸이 시신으로 발견돼 다행이라며 웃듯 울듯 눈가를 훔치던 한 아버지의 인터뷰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한다는 사실에 먹먹해집니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들 또한 ‘그냥 폐허’가 아닙니다. 장소는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곳은 폭격 직전까지 사람들의 삶과 애정이 켜켜이 쌓여온 구체적인 장소, 사랑하는 고향이었죠. 클루게는 이 책에서 ‘1945년 4월8일’ 무너진 장소들 역시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클루게는 대성당길 9번지에 무너진 한 건물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공습이 끝난 직후, 주석 장난감 병정 몇개가 창가 안쪽에 쓰러진 채 놓여 있었다. (…) 해마다 한 번씩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 되면 진열되었는데, 오직 그라메르트씨만이 그 병사들을 올바른 순서로 세워놓을 줄 알았다. 그는 지금 가장 사랑하는 이 병정들을 두고 공황 상태로 달아나던 중 크렙스셰레 주점에서 불타는 들보에 머리를 맞아 더 이상 어떤 의지도 세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 (건물은) 17시경에는 상자에 들어 있던 주석 장난감 병정들과 마찬가지로 덩어리져 녹아버렸고 완전히 연소되었다.”

땅 위의 폭격에는 서사가 있을 수 없다

<할버슈타트 공습>은 한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땅’에서 바라본 공습에는 아무런 극적인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저 쏟아져내리는 바가지 물에 쓸려가는 개미떼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죽고, 무력하게 휩쓸리고, 끝장나고, 폐허가 될 뿐입니다. ‘하늘’에서 조종간을 잡고 할버슈타트를 바라본 이들의 목적은 적의 ‘항복’조차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죽여 ‘사기’를 꺾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공습에 관여했던 고위 참모장교 윌리엄스는 공습 이전 한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말했습니다. “사기 저하용 폭격이 될 것입니다. (…) 완전히 폐허가 된 사람은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거든요.” 하지만 ‘사기’라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요. 애초에 대부분의 폭격은 대항할 수단도, 의지도, 결의도 없는 ‘민간인’들을 향해 쏟아부어졌는데요. 이들은 심지어 폭격기를 상대로 “항복할 기회”마저 갖지 못했습니다.

<할버슈타트 공습>에는,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어느 편이든 사람의 목숨은 똑같은 목숨이라는 점입니다.

‘할버슈타트 공습’은 가해국인 독일에 퍼부어진 폭격 중 하나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수년간 독일의 160여개 도시에 폭격이 쏟아져 독일인 60여만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이들 중 대부분은 민간인이었겠고요. 1943년 ‘고모라 작전’(함부르크 폭격)의 경우처럼 노동자계급 밀집거주지역에 폭격을 퍼부어 3만7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對)독일 폭격은 오랫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해왔다고 합니다. 실제로 오늘 이 글에서 처음 이 이름을 들어본 분들도 많으실 테고요. 저 역시 이 책 <할버슈타트 공습>을 접하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독일은 ‘뻔뻔한 전범국’이니까요. 거칠게 말하지면 “나치 독일은 다른 나라에서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악마이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누구든 죽어도 싸다”는 겁니다. ‘복수의 수레바퀴’가 맞물려 굴러가고, 또 다른 폭격과 전투가 벌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전형적인 논리입니다.

하지만 <할버슈타트 공습>을 읽다보면 어떤 나라의 사람이든, 그저 민간인들은 ‘아래로부터 무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적국이든 어디든요. 첨예한 상황에서는, 누군가들은 적국 민간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마치 ‘비겁한 양비론’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목숨이라는 사실은, ‘땅 위’의 관점에서는 문자 그대로 너무 당연한 얘깁니다. 폭탄이 떨어지는 곳에서 사라지는 것은 “국민의 사기”가 아니라, 누구나처럼 놀고 영화를 보고 출근을 하고 친구들과 만나고 수다를 떨고 학교에 가는 “사람의 삶”들입니다.

2023년 10월7일 어머니인 디차 하이만(84)이 하마스에 납치된 여성은 16일 CNN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를 납치한 하마스에 분노한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 정부에도 분노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분쟁을 종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가자지구에 얼마나 많은 미사일을 쏘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큰 폭력만 불러올 뿐이다.”

그의 말에 1945년 할버슈타트 폭격 이후, 한 주민의 말이 겹쳐집니다. “복수하고 싶냐”고 묻는 한 연구자의 질문에 살아남은 할버슈타트 주민은 그저 고요한 눈으로 이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잔인함이 일정 정도에 이르게 되면 누가 그것을 저질렀는지는 이미 상관이 없습니다. 잔인함은 그냥 그쳐야 합니다.”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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