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아래서 힘 잃은 2인자" 외신들, 리커창 별세 조명(종합)
"실용주의 강조했으나 시진핑 反기업 정책으로 성과 훼손"…"시대의 종언"
"당국, 사망 소식 축소해 다뤄…정권 비판·시위 경계하는 듯"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지난 10년간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던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별세하자 서방 언론들은 긴급·주요 기사로 보도하며 그의 생애를 조명했다.
외신들은 리 전 총리가 '2인자'로서 보인 소신 행보와 시진핑 국가주석 '1인 체제' 공고화로 존재감을 잃은 점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외신들은 베이징대에서 공부한 엘리트 경제학자 출신인 리 전 총리가 과거 중국 국내총생산(GDP) 수치를 신뢰할 수 없다고 언급하는 등 경제 상황의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말하려 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또 총리로서 시장 친화적 경제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며 실제로 합리적·실용적 경제정책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시 주석의 1인 권력 강화와 통제적인 정책으로 힘을 잃었다고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리 전 총리가 "빈부격차를 줄이고 저렴한 주택 제공에 초점을 둔 정책으로 덜 혜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다"며 "시 주석에 의해 결국 배제됐지만 경제정책 면에서는 실용주의로 인기 있는 지도자였다"고 보도했다.
BBC는 리 전 총리가 재임 시 "시 주석에 충성하는 그룹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현직 고위 관료"였으며 "최근 수년 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들 사이에서 고립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도 "엘리트 경제학자인 리 전 총리는 '리코노믹스'(리커창+이코노믹스)로 불리는 접근방식 아래 더 개방적인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공급자 측면의 개혁을 옹호했으나 이는 완전히 실행되지 못했다"고 평했다.
로이터는 이어 "궁극적으로 리 전 총리는 국가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진핑의 선호에 굴복해야 했고 시진핑이 요직에 자기 사람들을 앉히면서 리 전 총리의 권력 기반은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짚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 전 총리의 합리적인 정책 결정은 시진핑의 정치화된 통치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관료주의를 없애겠다며 사업 등록 기간을 대폭 단축한 것과 같은 리 전 총리의 성과는 시 주석의 반기업 정책으로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은 리 전 총리가 "자유시장과 중국의 더 빈곤한 시민들을 옹호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며, 시진핑 독재 부상으로 밀려난 정치적 대안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외신들은 영어에 능통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해온 리 전 총리가 중국 지도부 안에서 미국 등 서방에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인 목소리를 대변했다고도 평가했다.
CNN은 "중국과 서방 국가의 관계가 갈수록 경색되던 시기에 중국과 세계의 다른 접근법을 대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며 리 전 총리가 2021년 3월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이 공통의 이익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일화를 전했다.
외신들은 리 전 총리의 별세가 '한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전했다.
로이터는 일부 중국 지식인과 자유주의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자유주의 경제 개혁의 등불이었던 리 전 총리의 별세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도 싱크탱크 카네기차이나의 비상주 학자 이언 총의 인용해 "리 전 총리의 죽음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 내에서 눈에 띄는 온건한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아무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며 "이는 아마 시 주석의 권력행사에 대한 제약이 더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고 전했다.
외신들은 또한 중국 당국이 리 전 총리의 사망을 축소해 전달하고 인터넷에서 리 전 총리 관련 내용을 검열하는 상황에 주목했다.
BBC는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관영 언론들이 리 전 총리의 경력에 대한 공산당의 평가를 나타내는 공식적인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 등 사망 소식을 경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9년 리펑 전 총리 사망 때 "탁월한 당원, 오랜 기간 검증받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 군인이자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지도자"라는 찬사를 쏟아낸 것과 대조된다는 것이다.
BBC는 그러면서 "중국 전직 지도자들의 죽음은 과거에도 시위를 촉발한 적이 있다"며 "지난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했을 때 애도 목소리도 시진핑 주석에 대한 미묘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WSJ도 웨이보 등 소셜 미디어에서 리 전 총리 사망 관련 댓글이 검열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과거 중국 고위 관리들의 사망 때 대중의 애도 움직임이 현직 지도자를 겨냥한 대규모 시위로 발전한 적이 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도 그해 4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애도하는 집회에서 시작됐다"고 꼬집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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