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의 '그런데'] 족집게 과외 받는 대학

2023. 10. 27. 20: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집'만을 과거 공부로 여기는 경박한 풍습을 법으로 막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 세종대왕 때 사헌부에서 임금께 상소한 글입니다.

초집이 뭐냐고요, 요즘은 학생들이 '족집게 과외'를 받죠. 초집은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과거시험 족집게 예상 문제집입니다. 이 때문에 조정에선 골치가 아팠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족집게 과외를 지성의 전당이자 미래를 이끌 대학이 받고 있다는 걸 아십니까.

유수의 국내 대학들이 매년 회계법인에 거금을 주고 컨설팅을 맡기고 있거든요. 유명 회계법인의 대학 담당자가 1년에 버는 돈이 자그마치 100억 원이 넘을 정도인데 그 이유가 한심하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수도권 대학 10곳 중 7곳은 적자에 시달리고 비수도권에선 80% 이상이 이미 적자에 빠져있는 상태에서 정부지원금은 유일한 구명줄이거든요.

이 지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교육부 대학평가 제출 보고서를 그럴 듯하게 꾸미려고 돈을 주고 컨설팅을 받는 겁니다.

'좋은 대학이 돼 지원금을 많이 받아가라'는 게 원래 취지일 텐데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학생을 키우는 게 아니라 컨설팅 업체에 돈을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학생을 잘 키우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따져보죠.

우리나라 초중고 공교육비 지출액은 OECD 국가 평균을 훨씬 넘어가지만, 희한하게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은 1만 2,225달러, OECD 평균의 67.5% 수준에 불과합니다.

대학생을 키우는 데는 별로 돈을 안 쓰는 겁니다.

대학들은 2009년 이후 15년째 사실상 동결된 대학 등록금이 문제라고 입을 모으는데 그게 다일까요.

돈이 있어도 적립금이라고 쟁여놓고 안 쓰는 건 또 뭘까요.

시대는 무서우리만큼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AI(인공지능) 같은 기술의 진보와 새로이 출몰하는 전염병같은 걸 따라가고 막으려면 우선은 대학이 인재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대학이 이를 이끌어가긴커녕 돈 모으기에 급급하고, 정부는 대학의 숨통을 쥐고 되레 대학공멸을 막는다며 찔금찔금 보조금으로 연명케 하고

대학은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돈을 쓰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키우기 위해 돈을 써야합니다.

정부는 대학이 학생에게 투자하게 만들어야합니다. 컨설팅 업체에 돈을 바치게 하는 게 아니고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족집게 과외 받는 대학'이었습니다.

Copyright © MB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