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경관과 누각의 조화… 죽서루·영남루 국보 된다 [뉴스 투데이]

김신성 2023. 10. 27. 1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관동팔경 백미 삼척 ‘죽서루’
12세기 창건돼 조선 때 증축 거듭
당대 시기별 건축적 특징 보여줘
겸재·단원 등 묵객들 그림 소재로
조선 3대 누각 밀양 ‘영남루’
밀양강 절벽 위치 빼어난 조형미
고려 정지상 등 명사들 시문 남겨
왜란 때 일부 소실됐지만 되살려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강원·영남 지역의 대표 누각(樓閣)이 국보가 된다.

문화재청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를 국보로 승격해 지정할 예정이라고 27일 밝혔다. 누(樓)란 문과 벽 없이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 형식의 건물이다.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혀 온 ‘삼척 죽서루’는 고려 명종(재위 1170∼1197) 대에 활동했던 김극기가 죽서루의 풍경을 시로 썼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12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축과 정추 등의 시를 통해 처음에는 ‘서루(西樓)’로 불리다가 14세기 후반에 들어서 ‘죽서루(竹西樓)’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죽서루란 이름은 ‘동쪽에 죽장사(竹欌寺)라는 절이 있어서 그 서편에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죽서루는 다양한 기록을 통해 건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김수온이 1472년 쓴 ‘죽서루단청기(竹西樓丹靑記)’와 허목이 1662년에 남긴 ‘죽서루기(竹西樓記)’ 등에는 ‘1403년 부사 김효손이 옛터에 새로 창건했다’고 돼 있으며 보수·증축과 관련한 기록도 여럿 남아있다. 조선 후기 증축된 이후의 모습이 현재까지 잘 보존돼 있다.

문화재청은 “1403년 중앙 5칸(측면 2칸)으로 중창되고 1530년 남측 한 칸(측면 3칸), 1788년에는 북측 한 칸(측면 2칸)이 증축돼 현재와 같은 팔작지붕(맞배지붕 옆에 삼각형의 합각을 남기고 경사를 지어 기와를 올리는 지붕) 형태가 됐다”면서 “이처럼 조선 초기의 중앙 5칸과 조선 중기 이후 확장된 좌?우측 1칸은 기둥 배열, 가구의 짜임, 천장과 바닥면의 처리, 공포 및 세부 의장 등에서 시기별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강원·영남 지역의 대표 누각(樓閣)이 국보가 된다. 문화재청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를 국보로 승격해 지정할 계획이라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삼척 죽서루. 문화재청 제공
죽서루는 문학 작품과 그림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을 비롯해 단원 김홍도, 강세황 등 시인과 묵객들이 수많은 시문, 가사, 그림을 통해 푸른 숲과 주변에 흐르는 오십천(五十川)과 어우러진 죽서루를 묘사하고 있다.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밀양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꼽힌다. 통일신라 때 세운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에 있던 금벽루(金璧樓) 혹은 소루(小樓), 죽루(竹樓)라 불리는 작은 누각에서 비롯됐다. 고려 때 절은 사라지고 누각만 남아있던 것을 공민왕 때인 1365년에 밀양군수 김주가 다시 짓고 ‘영남루(嶺南樓)’라고 칭한 것이 관영 누각의 시작이었다.

조선 초에 밀양부사 안질이 영남루 서쪽 주변에 건물을 하나 더 지었고, 1442년 경상도사 권기가 이를 소루(召樓)로 명명했다가 그 후 임경당(臨鏡堂, 현 침류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연산군 때에는 밀양부사 김영추가 임경당 반대쪽인 영남루 동북쪽에 망호당(望湖堂, 현 능파각)을 지었다. 임진왜란 때 객사와 함께 모든 부속 시설이 안타깝게 소실됐지만 1844년 이인재가 밀양부사로 재임할 당시 대루를 확장하면서 많은 부속건물을 지었고, 관원들과 지방 손님들을 접대하는 객사로 사용했다.

경사지를 이용하여 건물을 적절히 배치한 영남루는 건물 자체의 조형미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은 다른 누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고려시대 정지상이 영남루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야경을 표현한 한시 ‘영남사루(嶺南寺樓)’를 쓰는 등 명사들이 수많은 시문을 남겨 조선 선조 때 영남루에 걸린 시판이 3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하나 지금은 12개의 시판이 남아있다.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강원·영남 지역의 대표 누각(樓閣)이 국보가 된다. 문화재청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를 국보로 승격해 지정할 계획이라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밀양 영남루.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두 문화유산은 건축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저명인사들이 방문해 시문을 남기는 등 학술 가치도 높아 국보로 지정하기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합천 해인사 홍하문, 함양 용추사 일주문, 곡성 태안사 일주문, 하동 쌍계사 일주문, 대구 달성 용연사 자운문, 순천 송광사 조계문 등 6건을 보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