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파벌 '공청단'마저 몰락···習 견제세력 완전히 사라졌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2023. 10. 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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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커창 前 중국 총리 심장마비 사망
한 남성이 2021년 3월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서 리커창 당시 총리가 연설하는 모습이 담긴 대형 화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중국 매체는 27일 리 전 총리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AFP연합뉴스
[서울경제]

‘시진핑 1·2기’ 때 중국의 2인자였던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7일 중국중앙TV(CCTV)는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병이 발생했고 27일 0시 10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향년 68세.

리 전 총리는 올해 3월 열린 ‘양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국가주석 후보로도 꼽혔으나 시진핑이 2013년 국가주석에 오르며 리커창은 2인자인 국무원 총리를 맡았다. 이후 올해 3월까지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했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의 최대 거물인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가 27일 사망하며 시진핑 국가주석의 ‘1인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의 경쟁 파벌인 상하이방(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거두’인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지난해 사망한 데 이어 세력이 약화된 공청단마저 리 전 총리의 사망으로 빠르게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청단·상하이방의 몰락으로 중국 공산당 3대 파벌 중에 시 주석이 속한 중국 고위층 인사 자녀들의 집합인 태자당 계열만 남게 됐다. 태자당도 사실상 시 주석 이후 부정부패 척결을 빌미로 대거 축출돼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올해 3월 ‘시진핑 3기’가 출범하며 중국 권력 최상층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조차 시 주석의 최측근인 ‘시자쥔(시진핑의 옛 부하)’들로만 채워진 상황이다. 리 전 총리의 사망으로 사실상 중국 내에는 시진핑 천하를 견제할 세력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38세에 장관급 오른 엘리트로 후진타오 후계자로도 꼽혔지만 習에 밀려 10년간 총리직 맡아

리 전 총리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 닮은 점이 많아 ‘리틀 후’로 불렸다. 후 전 주석과 같은 안후이성 출신인 데다 공청단에서 활약했다. 1983년 공청단 중앙서기처에서 중앙학교부 부장 겸 전국학생연합회 비서장을 맡아 당시 공청단 제1서기였던 후 전 주석과 인연을 맺은 후 리 전 총리는 승승장구했다. 1993년에는 최연소(38세)로 공청단 최고 서열인 제1서기에 올랐다. 후 전 주석보다 4년이나 어린 나이였다.

리 전 총리는 허난성·랴오닝성 당 서기를 맡으며 공청단 대표 주자이자 차기 국가주석 1순위 후보로 꼽혔다. 2006년 12월 ‘뉴스위크’ 아시아판이 ‘내일의 스타’ 특집에서 리 전 총리를 중국의 미래 지도자로 소개했다. 당시만 해도 저장성 당 서기였던 시 주석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상황이 뒤바뀐 것은 1년 만이다. 2007년 시 주석이 상하이 서기로 깜짝 발탁되고 그해 10월 열린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당 대회)에서 리 전 총리를 권력 서열에서 앞서면서다. 시 주석은 당시 6위로 상무위원회에 진입하며 7위인 리 전 총리를 앞섰다.

리 전 총리는 이때 시 주석에게 밀렸지만 여전히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어 중국을 이끌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후 전 주석의 총애를 지나치게 받고 있다는 것이 걸림돌이 됐다. 후 전 주석이 공청단 출신의 최측근인 리 전 총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공청단의 연이은 등극을 막으려는 상하이방이 적극적인 비토에 나섰고 쩡칭훙 전 부주석이 시 주석을 중재안으로 제시하며 후계 구도의 무게 추가 시 주석으로 기울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베이징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리 전 총리는 총리를 맡으며 중국 경제개혁을 이끌 것으로 주목받았지만 시 주석은 권좌에 오른 뒤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

소신행보로 최고권력과 긴장관계 "하늘이 보고 있다" 끝까지 쓴소리 '시자쥔' 장악으로 習 체제 더 강화 웨이보 애도물결···당국 SNS 단속

집권 이후 시 주석으로의 권한이 강화된 상황에도 리 전 총리는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다. 때로는 쓴소리를 하며 시 주석과 아슬아슬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5월 전인대 기자회견이다. 리 전 총리는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7만 원)밖에 안 되며 1000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강조한 ‘샤오캉(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반박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제로 코로나’로 대표되는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퇴임 직전 마지막 인사로 국무원 판공청 직원들에게 한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고들 말한다”는 발언을 두고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비판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한편 리 전 총리 사망에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는 “믿고 싶지 않다”는 등의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이에 정부 공식 웨이보 계정은 리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을 게시하면서도 댓글은 막는 등 일부 SNS 단속도 실시했다.

리 전 총리의 사망에 주요 국가에서는 애도를 표했다. 우리 외교부는 “리 전 총리가 한국의 가까운 친구로서 한중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전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6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리 전 총리의 사망에 조의를 표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도 정례 기자회견에서 “삼가 명복을 빌며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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