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일기 또는 진실된 문학···정신질환으로부터 살아남은 자의 문체[신새벽의 문체 탐구]
요가
에마뉘엘 카레르 지음·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 370쪽 | 1만6800원
무서운 불황이다. 외식 물가도 장바구니 물가도 비싼 가운데 출판시장 역시 어둡다. 이 와중에 미래 전망이 밝은 분야가 있는데, 그게 항우울제 시장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떠돈다. 정신질환이 있는 출판 종사자로서 심란한 상황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에마뉘엘 카레르의 <요가>는 요가를 하다 정신질환으로 무너진 내면 탐구의 기록이다. 1957년 파리 태생의 카레르는 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일컬어지는데, 초기 기독교 역사를 재구성한 700쪽짜리 팩션 <왕국>이나 러시아에서 태어난 동명의 정치인을 다룬 <리모노프> 등 여러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2020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요가>는 카레르 입문작으로 좋다.
카레르가 어떤 작가냐고 묻는다면 ‘그는 사실을 가지고 작업한다’고 답해도 무방하다. 미국 작가 트루먼 카포티가 일가족 살인사건을 취재해서 쓴 <인 콜드 블러드>를 ‘논픽션(비소설) 소설’이라 부르는데, 카레르는 논픽션 소설의 계승자다. 가족을 살해한 한 남자를 취재한 <적>, SF 소설의 거장 필립 K 딕의 평전, 러시아 정신병원에 50년 갇혀 있었던 헝가리 남자를 만나러 가는 <러시아 소설> 등등. <요가>는 다른 남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점만이 다르다.
카레르는 요가 경력이 30년이라고 한다. 그에게 요가란 심오한 명상이자 체력 단련법이며 동호회 활동이다. <요가>의 줄거리는 이렇다. ‘나’는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요가원에 들어간다. “요가에 대한 기분 좋으면서도 세련된 책”을 써서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게 동기다. 그러나 열흘 동안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나는 중간에 나온다. 2015년의 ‘샤를리 에브도’ 총격 테러 사건 때문이다. 이로부터 성공가도를 달리던 나의 삶은 파탄으로 접어든다.
정신병 시절의 회고는 문학에서 인기 주제인데, 그것은 글쓰기의 고유한 치유 능력에서 비롯된다. 아픈 사람은 글을 쓰게 되고, 글을 쓰면서 나아진다. 독자는 작가가 이제는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다는 결말을 알고 있다. 카레르는 자신의 회고가 뻔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진실된 문학으로 읽히길 원한다. 그는 요가를 믿는 사람으로서 불신의 시기를 고백하며 글에 깊이를 부여한다. 자기 호흡에 집중하는 동안 세계에서 테러가 일어나면 어떡하겠는가? 내면의 기쁨과 세계의 고통 중에 무엇이 중한가? 요가에 관한 믿음과 불신이 교대하는 과정에서 즐거운 성생활, 테러로 죽은 친구, 양극성 장애의 치료, 그리스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난민 청소년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치 유명한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에서 보는 것 같은 우화도 있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일기도 있다. “요가에 대한 기분 좋으면서도 세련된 책은 어처구니없는 계획으로 느껴진다. 그러다 모르는 사이에 분노가 두려움으로 변한다.” <요가>의 재치는 짧거나 긴 글들을 소제목을 달아서 죽 이어놓은 구성에 있다. ‘숲속에서 섹스하기’ ‘오빠분이 안락사를 요청했는데, 어떻게 하죠?’ ‘삼성 갤럭시’ ‘3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같은 소제목이다. 소제목 달기는 논픽션을 편집하는 전통적인 방식인데, 이 책은 그럼 어떻게 논픽션 ‘소설’이 되는 것일까?
카레르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투명하게 고백하는 문장들을 심어놓는다. “나는 자아도취적이고, 불안정하고, 위대한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꽉 찬 사람이다.” 번뇌가 글의 내용이라면 요가는 글을 쓰는 방식이다. 요가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요가를 하듯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그가 역설하는 문학관이다.
“내가 보다 나은 인간이 되려 하는 이유는 그리하면 보다 나은 작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럼 보다 나은 소설이 되었을까?
전 세계 23개국에 수출된 <요가>에 대한 기사들은 카레르의 전 아내인 저널리스트 엘렌 데브닉이 사전 동의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요가>가 출간된 후 데브닉은 삭제를 요구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글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카레르는 이미 데브닉이 말한 대로 원고에서 상당량을 삭제했다고 응수했다.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남아 있는 글인 ‘인용문’과 그다음 ‘착한 물’ 사이 공백이 소설의 결말을 석연치 않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앞의 글은 내 삶은 사랑에 실패했다고 말하는데, 뒤의 글은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고 말한다. 영성에는 전혀 관심 없는 젊은 여자가 요가 자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뒤의 글은 그 자체로만 보면 그냥 “멋지지 않은 결말”(‘런던 리뷰 오브 북스’)이다. 하지만 전 아내의 존재를 알고 나서 보면 삶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을 얼버무린 결과가 된다. <요가>는 작가가 홀로 얻은 깨달음의 기록이니 독자는 자기만의 깨달음을 따로 찾는 수밖에 없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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