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에 쓴소리' 리커창 애도물결 … 당국, SNS 음모론 단속 나선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유일한 정치적 라이벌로 여겨졌던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돌연 사망했다. 향년 68세.
중국중앙(CC)TV는 "상하이에 머물던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마비가 발생했고,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실패해 27일 0시 10분에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정은 이날 오후 6시 30분(현지시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명의로 낸 부고문을 통해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인 리커창 동지가 서거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정은 "그의 서거는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라며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로 더 긴밀하게 단결해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 관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10년간 총리직을 수행한 명실상부한 중국의 2인자였다. 중국 내 최고 경제 전문가로 꼽히며 중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주목받았고, 2인자이면서도 중국 공산당과 인민에게 사랑을 받았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주석을 향해 유일하게 쓴소리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히며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갈수록 시진핑 1인 체제가 강화되면서 결국 비운의 총리라는 꼬리표를 단 채 씁쓸하게 퇴장했다. 1955년 중국 안후이성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문화대혁명 당시 이른바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에 동참해 농촌으로 내려갔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0년간 중단됐던 대학 입시 제도가 부활한 첫해, 중국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베이징대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공직 생활을 하며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리 전 총리는 대학 재학 시절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했고 향후 공청단 당서기까지 지냈다. 1998년 43세 나이로 허난성 성장을 맡아 역대 최연소 성장이 됐고 2004년에는 랴오닝성 당서기로 발탁됐다. 2007년 10월 17차 당대회에서 그는 당시 시진핑 상하이시 서기와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며 차기 최고 지도부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과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시 주석에게 결국 주석 자리를 내주며 2인자인 총리직을 맡아야 했다.
리 전 총리는 재임 시절 독자적 목소리를 많이 냈고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2020년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인 6억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8만원)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는 시 주석이 성과로 내세운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과 배치되는 발언이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이 한창이던 지난해에는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리 전 총리는 지난 3월 퇴임 당시 고별사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면 언젠가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격려라는 해석과 함께 중국 최고지도부를 견제하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리 전 총리가 올해 3월 양회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자 중국 당국은 리 전 총리의 '정부 부처 고별 투어' 영상을 인터넷상에서 삭제하는 등 본격적인 '리커창 지우기' 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퇴임 후에도 리 전 총리를 향한 중국 인민의 신뢰는 더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 전 총리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에서는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선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가 19억회 넘게 열람됐고, 관련 글은 57만건 이상 작성됐다. 온라인에서는 "믿고 싶지 않다" "편히 가세요" 등 메시지가 잇따랐다. 시간당 수만 개의 추모글이 올라오는 가운데, 민감한 발언이 삭제되는 등 당국이 '댓글 관리'에 나선 정황도 보인다. 리 전 총리가 돌연 사망하면서 중국의 1인 독주 체제가 공고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창 총리와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각각 공산당 서열 2위, 3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시 주석을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베이징 손일선 특파원 / 서울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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