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 만들고 귤 따고 … MZ세대 주말마다 도시탈출
시설 5년새 50% 늘어 353곳
올해 이용자 12만명 달할듯
감정노동자·학폭 피해자 등
전문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
농촌 고부가 新사업 발돋움
최근 충남 예산군 오색꽃차 치유농원. 3300㎡ 규모 꽃농장에 마리골드, 팬지를 비롯한 색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양갱을 만들려고 열심히 꽃을 따는 가족 방문객들 손놀림이 분주하다. 재가노인복지센터 직원 20여 명도 직접 딴 마리골드로 꽃차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노인 생활지원사로 활동 중인 이희진 씨는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평소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는데 이곳에 와서 스카프에 꽃물을 들여보고 직접 만든 꽃차도 마시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신다"고 웃음 지었다.
제주 조천읍에 있는 치유농장 제원하늘농원에선 구경석 씨가 네 살, 다섯 살배기 아이들과 함께 풋귤 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딴 풋귤로 직접 귤청을 만들며 연신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구씨는 "휴일마다 아이를 데리고 치유농장을 찾는다"며 "아무것도 안 하고 바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도시 생활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고 환하게 웃었다. 2021년 문을 연 이곳은 도시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업 첫해 2500여 명이었던 방문객은 지난해 4000명으로 60% 늘었다.
원예, 작물, 숲길 같은 농촌 자원을 활용해 지친 도시인들의 심신을 회복시켜주는 치유농업 시장이 뜨고 있다. 삶에 지친 도시인은 물론 최근에는 장애인, 치매노인, 학교폭력 피해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까지 등장하며 고부가가치 농촌 신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27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전국 치유농업시설은 2020년만 해도 234곳에 그쳤지만 코로나19 국면이 본격화한 2021년 254곳으로 늘었고 지난해 353곳까지 확대됐다. 최근 5년 새 무려 50.9%가 늘어난 셈이다. 수도권과 인접한 충남이 63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55곳), 강원(46곳), 경남(39곳), 충북(22곳), 제주(10곳) 순이다.
최근 충남대 산학협력단이 산림·원예자원 경제적 편익, 치유농업에 대한 국민 지불 의사 금액 등을 조사 분석한 결과 국내 치유농업의 사회·경제적 가치는 3조7000억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안기화 오색꽃차 대표는 "일반인이나 학생도 많이 찾지만 생활지원사, 사회복지사처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한 업종 종사자들이 주기적으로 찾아 감정 치유 활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제주 한경면에 있는 환상숲곶자왈공원도 도시인이 즐겨 찾는 치유농장이다. 상록수와 양치식물이 우거진 숲 곳곳에는 피톤치드를 들이마실 수 있는 산책로 2㎞가 조성됐다.
이형철 환상숲곶자왈공원 대표는 "봄가을에는 체험학습을 하려는 학생 팀, 방학 때는 가족 단위 팀, 그 외 기간에는 젊은 층이나 요양원 팀이 주로 방문한다"며 "처음에는 6000평(약 2만㎡)만 개방했는데 방문객이 점점 많아져 지난해 6000평을 추가로 열었다"고 전했다.
국내 치유농업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2021년 코로나19 국면 때부터다. 조용한 자연환경을 찾아 몸과 마음을 달래려는 수요가 늘며 당시 치유농업법이 처음 시행됐고 정부 지원 근거가 마련되며 새로운 농촌 산업으로 뜨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큰 업종 단체와 협약을 맺고 체계적으로 전문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해주는 곳도 속속 등장했다.
안 대표는 "도시 생활에 지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를 중심으로 시골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유행하고 있다"며 "이 같은 수요가 치유농업 시장을 키우고 있는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쾌적한 자연환경을 찾아 도시에서 산촌으로 이주하는 도시인은 사상 최대로 늘었다. 매일경제가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산촌으로 귀촌한 이주 가구는 2017~2019년엔 4000가구 안팎으로 정체 상태를 보였지만 2021년 처음 5000가구(5093가구)를 돌파하더니 지난해 5155가구로 역대 가장 많은 수준으로 늘었다.
[예산 김정환 기자 / 제주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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