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과 기타리스트, 페달 위에서 함께 금빛 춤췄다 [항저우V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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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덤 사이클은 2인승 자전거다.
앞뒤 안장 두 자리에 누가 앉아도 상관없지만,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올라타면 조금 특별해진다.
김정빈(스포츠등급B)과 윤중헌은 2022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사이클 남자 시각장애(MB) 종목에서 3관왕을 합작했다.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였던 윤중헌은 동호인 동료 박찬종(33)이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장애인사이클 선수로 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탠덤 사이클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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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덤 사이클은 2인승 자전거다. 앞뒤 안장 두 자리에 누가 앉아도 상관없지만,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올라타면 조금 특별해진다. 비장애인 파일럿이 앞자리에서 핸들을 쥐고 ‘페이스메이커’ 겸 ‘내비게이터’를 맡고, 시각장애인 선수가 뒷자리에서 함께 페달을 밟으며 추진력을 증폭한다. 호흡과 리듬의 균형을 잘 유지할 수만 있다면, 둘 이상의 시너지가 난다. 올가을 항저우에서, 한국의 탠덤 사이클 호흡은 더할 나위가 없다.
김정빈(스포츠등급B)과 윤중헌은 2022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사이클 남자 시각장애(MB) 종목에서 3관왕을 합작했다. 대회 개막 이튿날인 23일 4000m 개인추발에서 한국 선수단의 첫번째 금메달 물꼬를 텄고, 26일 18.5㎞ 도로독주에서 두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선수단 첫 2관왕에 올랐다. 이어 마지막 27일 69㎞ 개인도로에서 1시간35분27초 기록으로 결승선에 가장 먼저 들어오며 사상 첫 사이클 3관왕마저 접수했다.
세번째 애국가를 듣고 내려온 김정빈은 “오늘이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서 탔다. 1등을 확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서 결승선에 들어왔는데 그동안 겪은 우여곡절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울컥했다.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경기파트너 윤중헌도 “같이 땀 흘리며 고생한 (김)정빈 님에게 고맙고, 파일럿으로 저를 선택해주고 잊지 못할 경험 만들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했다.
둘이 합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불과 5개월 전의 일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제 짝을 찾은 효과는 컸다. 김정빈은 지난 6월 타이에서 열린 장애인사이클 아시아선수권대회 도로독주에서 우승하며 생애 첫 국제 대회 금메달을 따냈고, 넉 달 만에 아시안게임 3관왕까지 달성했다. 모두 윤중헌과 함께 일군 성취다. 나긋한 말씨부터 조용한 성격까지 닮은 둘은 2주 간격으로 생일이 붙은 31살 동갑내기이기도 하다.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트랙과 도로 위에서 둘의 소통 사이에 방지턱은 없었다. 윤중헌은 “특히 도로는 변수가 많다. 짧은 코너가 있는가 하면 깊게 꺾이는 구간이 있고,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거나 오르막에서 같이 댄싱(일어서서 페달을 밟는 것)을 해야 할 때도 있다”라며 “(김)정빈 님이 몸으로 느끼기 전에 미리 인지할 수 있도록 말을 많이 한다”라고 설명했다. 김정빈은 “저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윤중헌의 말을) 들으면서 탄다. 그렇게 서로 맞춘다”라고 했다.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였던 윤중헌은 동호인 동료 박찬종(33)이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장애인사이클 선수로 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탠덤 사이클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지난해 9월 왼 다리를 절단한 뒤 의족을 달고 전업 선수로 전향한 박찬종은 재활일기로 사이클인들의 심금을 울린 인물이다. 윤중헌은 “(박)찬종이 형 소개로 김정빈 선수를 만났다”라며 “탠덤을 알게 된 뒤 ‘정말 아름다운 동행이구나’라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윤중헌의 본업은 소방관(남양주소방서)이다. 국가대표를 겸하면서 비번인 날을 쪼개 훈련하고, 공가를 내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김정빈은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 지금은 음악은 내려놓고 한 중소기업(하이브시스템)에 장애인 운동선수로 채용돼 사이클을 탄다. 밴드에서 익힌 하모니에 대한 감각은 탠덤 페달 어딘가에도 묻어 있다. 즉, 그들의 자전거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조합이면서 전직 기타리스트와 현직 소방관의 조합이기도 하다.
지난 26일 대회 두번째 시상대에서 내려온 김정빈에게 ‘사이클 최고의 순간이 오늘이냐’고 물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그럼요. 오늘이고, 곧 다시 바뀔 거예요”라고 답했고, 다음날 그 말을 지켰다.
항저우/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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