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추구하며 견디는 삶은 고귀하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포세는 사뮈엘 베케트, 헤럴드 핀터 뒤를 잇는 현대극의 대가이자 단문의 반복을 통해서 덧없고 연약한 인간 실존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가는 독특한 산문 문체로 유명한 작가다. '어느 여름날' '가을날의 꿈' 등 그의 희곡은 전 세계 5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수천 번 넘게 공연되었다.
최근에 나온 '멜랑콜리아 Ⅰ-Ⅱ'(민음사 펴냄)는 노르웨이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Ⅰ부는 1853년 헤르테르비그가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 유학하던 시절 이야기다. 재능을 믿고 고향을 떠난 헤르테르비그는 예술에 대한 회의와 불안, 하숙집 딸 헬레네를 짝사랑하며 괴로워하다가 끝내 망상과 우울을 이기지 못한 채 정신적 파탄에 빠진다.
Ⅱ부는 그로부터 약 50년 후 1902년 헤르테르비그의 죽음 전후 이야기로, 누이동생 올리네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치매로 고통받는 올리네는 음식과 배설 등 일차원적 욕망에 매달리면서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의 파편을 통해 독자를 헤르테르비그의 예술세계로 이끈다. 두 화자 모두 제대로 말할 수 없다. 무명 화가 헤르테르비그는 정신이 나갔고, 이름 없는 여인 올리네는 치매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세는 이들에게 입술을 빌려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이 한 줄기 빛, 즉 예술과 사랑과 구원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빛도 사라질 것이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 헤르테르비그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끝없이 되뇐다. 또한 올리네는 끊어질 듯한 발의 통증과 터질 듯한 배설욕을 견디며 "집에 갈 수 있다"고 중얼대면서 걷는다. 언뜻 보면 삶이란 냉대와 배신으로 얼룩진 오욕의 연속이고, 누추하고 추악한 고통의 악순환 같다. 금세 속옷을 더럽힐 듯한 절박함 속에서 비틀비틀 걷는 올리네의 발걸음은 이를 암시한다.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인간은 자존을 잃고 어둠의 짐승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추구하면서 견디는 자에게 빛을 던져준다. 헤르테르비그는 우울과 착란을 이기고 아름다운 풍경화를 남겼고, 올리네는 무사히 집에 이르러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평온한 빛을 보았다. 만연한 어둠에 지지 않고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을 갈망하는 삶만이 고귀하다. 포세의 소설은 우리에게 이를 알려준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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