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공짜점심] 재난을 치유하는 정치

김유신 기자(trust@mk.co.kr) 2023. 10. 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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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태어난 아이가 얼마 전 첫돌을 맞았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 마음은 배로 아프다는 걸 아이를 키워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생후 한 달 무렵 고열로 아이가 병원 신세를 졌다. 고사리 같은 손에 주삿바늘이 꽂힌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다. 울다 지친 아이를 바라보며 대신 아파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빠가 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은 부모 마음이 이런데 20년 이상 자녀를 키운 부모 마음은 어련할까. 하루아침에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상실감과 비통함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 희생자들이 안치된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 취재에 투입됐다.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듣기 위해서였다. 장례식장은 기자들에게 가장 쉽지 않은 취재 장소 중 하나다. 자식 잃은 부모에게 기자는 무엇을 물어야 하나. 그럼에도 그들의 사연과 답답함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게 직의 본분이라 생각했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질문을 했고 그들의 사연을 전했다.

희생자 A씨는 이태원 인근에서 자취하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 참변을 당했다. 저녁에 편의점에 간식을 사러 나갔던 A씨는 대규모 인파에 휩쓸려 희생됐다. 함께 나왔던 친구는 심폐 소생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A씨의 호흡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A씨 부친은 "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제발 보이스피싱이길 간절히 바랐다"면서 "부녀간 인연이 여기까지인 걸 어쩌겠습니까"라는 말을 전한 채 고개를 떨궜다.

희생자 B씨는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몇 년 만에 기분을 내러 친구들과 외출했다 사고를 당했다. 졸업을 앞두고 찍었던 B씨의 졸업사진은 결국 영정사진이 됐다. B씨의 부친은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연신 되뇌었다. 이렇게 희생된 159명의 사연은 제각각 달랐지만 애끓는 심정은 같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열리는 시민추모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고민하다 결국 참석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이 주도하는 정치집회 성격이 짙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에 수년간 지속된 소모적 논쟁과 정치 갈등 영향이 커 보인다.

행여 현장 참석 시 돌발 사태라도 발생하면 다시 불거질 국민의 극단 분열을 고려해야 하는 대통령의 고뇌도 이해가 간다. '재난을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는 건 윤 대통령의 소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난'을 치유하지 않는 '정치'는 설 자리가 좁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방을 마치고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는 참석한 윤 대통령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라는 따뜻한 정치는 예상보다 눈높이가 높은 것만도 아니다.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투명한 7시간 행적에는 분노를 표했지만 연평도 포격도발 전사자 추모식에 갑자기 쏟아진 비에도 우산을 쓰지 않았던 김황식 전 총리는 찬사와 응원을 받았다. 위로를 전하는 정치에 공짜는 없다. 꼭 필요한 대가는 '공감'이다. 그 대가는 말보다 진심을 보여주는 행동이 더 잘 통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대선 때 출간됐던 책 중에는 '윤석열의 진심'이 있었다.

[김유신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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