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을 ‘합성’으로 둔갑…전자담배 세금의 비밀
'천연'과 '인조'. 흔히들 두 가지를 떠올리면 인조보다는 천연이 더 비싸고, 천연이 더 좋을 거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천연 제품을 굳이 인조 합성 제품이라고 속여 판다면, '굳이 왜?'하는 의문이 들고요.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쉽게 접하는 전자담배 액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합성니코틴'은 담배가 아니다?
전자담배에 쓰이는 액상의 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흔히 담배로 불리는 식물 연초에서 추출한 '천연 니코틴'과 식물 원료는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화학적 과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합성 니코틴'이 있습니다.
모두 니코틴의 일종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현행법상 합성니코틴은 담배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현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담배의 정의가 아래와 같기 때문입니다.
▲담배사업법
2조 1. "담배"란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말한다.
즉, 일반 담배에 사용되는 '연초'라는 식물을 원료로 하는 경우에만 담배로 정부가 분류한 겁니다. 합성 니코틴의 경우 담배로 분류되지 않으면서 '일반 화학 물질'로 분류됩니다. 모두 니코틴일 뿐인데, 분류가 달라진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되나 싶겠지만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생기는 이점이 꽤 많습니다.
■ 세금 피하는 '합성 니코틴'
합성니코틴의 이점, 우선 가격입니다. 취재진이 한 전자담배 액상 판매점 방문해 액상 성분과 가격을 문의하니 "합성 니코틴이 포함된 제품은 저렴한 원가에 들여온다"고 답했습니다. 합성니코틴 액상 제품이 저렴하게 판매되면서,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을 더 찾게 되고, 최근엔 천연니코틴 액상은 찾아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합성니코틴이 더 저렴하게 판매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세금'에 있었습니다.
담배로 분류되는 '천연니코틴'의 경우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개별소비세 등 1 ml 당 1,799원의 세금이 부과됩니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0 ml 크기의 니코틴 액상으로 따지면 약 54,000원의 세금이 부과되는 겁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합성니코틴에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 평균 2만 원에 판매되는 30ml짜리 합성니코틴 액상이 7만 4,000원까지 세 배가량 뛰게 되는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로 판매도 일반 담배보다 쉽습니다. 온라인으로 담배를 구입한다? 당연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합성니코틴은 가능합니다. 담배사업법상 담배는 소비자에게 우편판매나 전자거래로는 판매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합성니코틴 제품은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온라인으로도 쉽게 구매를 할 수 있습니다.
전자담배 액상을 온라인으로 팔고 있는 업체는 '미성년자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지만, 편의점이나 상점에서처럼 대면으로 신분 확인이 이뤄지지 않아 엄격한 관리가 어렵습니다. 미성년자도 온라인에서 성인인증만 거치면 쉽게 주문해 우편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중 판매 제품 분석해보니…'허위 신고'
문제는 이런 이점 때문에 천연니코틴을 합성니코틴으로 속여 파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세금도 내지 않고 판매도 더 쉬워지니까, 거짓으로 신고하는 거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유동수 의원실이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있는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액상 제품 25종을 관세청에 성분 의뢰했습니다.
분석 결과 총 2개 제품에서 '연초 성분'이 확인됐습니다. 합성니코틴이 아닌 천연니코틴이 함유된 제품이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합성니코틴 제품인 것처럼 속여 버젓이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합성인지 천연인지, 성분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취재진이 직접 제품을 살펴보니 성분 표기도 없는 제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연초 성분이 검출된 제품 2개 중 하나는 그냥 '니코틴 포함'이라고 적혀 있었죠. 나머지 한 제품은 당당히 '합성니코틴(Synthetic Nicotine)' 이 포함되어 있다고 표기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해당 제품은 인도네시아에서 지난해 11월 수입된 제품이었는데, 관세청은 "탈세 목적으로 천연니코틴을 합성니코틴으로 허위신고하는 행위를 엄정단속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 "제대로 신고하면 바보라는 인식 생겨"
한국전자액상안전협회(KELSA) 김용덕 회장은 "합성 니코틴은 세금 부과가 안 되니 업체들이 천연을 합성으로 둔갑시켜 수입한다"며 "허위신고를 해도 행정 처분만 있다 보니 처벌을 받고도 사업자 명의를 바꿔 사업을 이어나가는 수법"이라고 밝혔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미 허위 신고가 흔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 회장은 "연초를 합성으로 속여도 잘 적발되지 않아 업계에서는 오히려 불법을 안 저지르면 바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담당 부처가 명확하지 않아 관리·감독이 허술한 점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업계는 오히려 정부에서 관리 감독을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이렇게 허위 신고가 빈번하다면 판매자는 정확한 제품 성분을 알고 있을까요? 한 전자담배 액상 판매자는 "제가 팔고는 있지만, 저도 성분은 정확히 모른다"고 털어놨습니다. "제조사에 성분을 물어봐도 자료도 주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양심 있는 판매자가 제대로 신고된 제품을 유통하려고 해도, 제조사가 성분을 숨길 수 있다면 어떤 물질이 들어갔는지 판매자도 알 도리가 없습니다.
■ "국민 건강권 해칠 문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유동수 의원은 "전자 담배 액상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담배사업법상 합성니코틴도 담배로 포함 시켜 성분에 대한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허위 성분 신고는 자칫 잘못 관리하면 국민의 건강권을 해칠 수 있는 문제라는 겁니다.
또 "잎 담배에서 추출한 것은 담뱃세를 부과하고 줄기 뿌리의 경우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등 세법도 어디서 추출했던 것과 관계없이 모두 담뱃세로 통일해야 한다"며 세제에 대한 정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동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0년까지 과세 대상이 아니었던 줄기와 뿌리에서 채취한 천연니코틴과 합성니코틴 수입 중량은 최근 5년 반 동안 약 21만 3,747 리터. 합성니코틴도 천연니코틴과 동일하게 과세를 한다고 가정하면 약 5,272억 원의 세수가 걷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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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우 기자 (y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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