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뇌과학] 보잘것 없는 생물도 배우고 기억할까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 뿐만 아니라 하등하다고 여겨지는 곤충과 벌레들도 학습도 하고 기억도 한다. 왜 이들에게도 기억력이 필요할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연합학습(associative learning)은 학습 능력을 가진 생명체가 갖고 있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기억 능력이라 볼 수 있다. 연합학습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서로 무관한 정보를 연관시키는 것으로 그 연관성의 성립 자체가 새로운 정보를 되뇌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생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위치를 기억하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분이나 죽음과 연결될 수 있는 위험 자극 등을 피하는데 필수적이며 따라서 생존과 아무런 상관이 없던 정보들이 필요에 의해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들과 연관되어 같이 저장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생물이 학습 능력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연합학습 능력의 존재 여부를 시험하는 경우가 많다.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모든 생물이 당연히 연합학습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학습능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하드웨어 신경계를 갖추어야 하는 요구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신경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신경기능을 담당하는 세포들과 이들의 연결망을 특정 기능을 구현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고 복잡하게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정교하고 복잡한 신체 구조는 이를 운영하는 자원 에너지를 많이 소모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양이 좋은 컴퓨터는 빠른 처리속도를 자랑하지만 전력을 많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신체를 유지하는 것은 매일 배고픔을 겨우 달래며 삶을 유지해야 하는 생물들에게는 너무 사치스러운 선택일 수도 있다.
따라서 어느 생명체는 비용과 유지비가 많이 드는 신경계를 구축하기 보다는 가장 필수적인 정도의 신체구조와 많은 자손 그리고 극도로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방식을 활용하여 진화해왔을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현존하는 생물체들 중 지능을 갖춘 고등 동물은 신경계의 고도화를 선택하고 지능이 낮을 것이라 생각되는 하등 동물이나 곤충들은 간단한 신경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러한 편견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의외로 간단한 구조의 신체 구조를 가진 생명체에서도 정교한 신경계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전 글에서 예쁜꼬마선충과 같은 작은 선충류도 학습과 기억이 발생한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으며 초파리, 바다달팽이와 같은 여러 모델 동물들이 고등동물에게도 존재하는 진화적으로 보존된 학습과 기억의 분자 메커니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한 바가 있다. 더 단순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생명체도 기억능력이 있을까.
한가지 예로 해파리를 들 수 있는데 이 동물은 몸의 9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고 젤라틴성 몸체를 가지고 있으며 물 속에 부유하거나 특정 장소에 부착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포유류에서 볼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신비로운 동물이다. 유성/무성생식이 모두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신체 재생력이 한계가 없어 신체 일부가 잘리면 이를 재생시키기도 한다.
작은보호탑해파리(Turritopsis nutricula)의 경우는 ‘영생불사’의 능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외부 환경이 나빠지면 어린 개체상태로 바뀌었다가 적절한 환경에서는 다시 분화하여 어른 개체로 성장과정을 수시로 바꿀 수 있어서 수명이 무제한적으로 연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류의 해파리들 중 연구자들의 오랜 관심을 받아온 해파리는 ‘상자해파리(Tripedalia Cystophora)’이다.
상자해파리들은 무려 24개의 눈으로 구성된 ‘로팔리아(rhopalia)’라 불리는 복잡한 시각계를 갖고 있으며 시각적인 정보를 적극 활용하여 장애물을 피하거나 능동적으로 먹이를 따라가 독이 있는 촉수 내 자포들로 사냥할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뇌가 존재하지 않지만, 최근 연구 결과(doi.org/10.1016/j.cub.2023.08.056)에 따르면 로팔리아라는 시각계가 뇌의 역할을 수행하여 학습능력을 갖추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상자해파리가 자연 상태에서도 장애물을 피하면서 유영하곤 한다.
따라서 이들을 특정 시각적 패턴을 갖고 있는 인위적인 장애물을 피하게 하는 학습과제를 수행시키면 로팔리아의 시각계가 시각정보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학습 초반에 실수로 장애물과 부딪힐 때 받는 물리적 자극을 함께 결합하여 시각 정보와 물리적 정보를 연합하는 학습을 매개한다는 것이다.
만일 상자초파리가 시각 또는 물리적 자극 중 하나라도 학습 과정에서 제공받지 않는다면 연합학습에 의한 회피행동 증가를 관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로팔리아는 해파리의 뇌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뇌의 구조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간단한 구조와 기능을 지녔지만 최소한 학습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은 모두 갖추고 있다.
스웨덴 룬트대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로팔리아에서는 시각정보 처리 뿐만 아니라 해파리가 수영하면서 반복적으로 몸체를 수축하게 하는 운동 신호 헤엄 페이스메이커(swim pacemaker) 전기 신호를 방출하는데 이 페이스메이커 신호는 시각자극에 의해 조절 받는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10.1007/s00359-008-0336-0).
로팔리아에서 방출되는 전기신호가 주변 빛의 세기를 변화시킬 때마다 그 빈도가 유의미하게 변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로팔리아가 시각 자극을 받아들여 운동 신호를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로팔리아에서 서로 다른 두 자극들이 연합될 수 있지 않을까 물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상자해파리에서 로팔리아만을 조심스럽게 떼어낸 다음 로팔리아와 연결된 신경다발에 약한 전기 자극 (장애물에 부딪힐 때 받은 물리적 자극을 흉내)과 로팔리아의 눈 중 하나에 시각 자극을 동시에 노출시켰다.
인위적으로 두 가지 자극을 연합시키는 것을 모사한 것이다. 이 때 로팔리아에서 기록되는 헤엄 페이스메이커 전기 신호의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회피행동의 결과물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 결과 헤엄 페이스메이커 신호가 희미한 시각 신호가 주어지는 상황에서도 회피행동과 연관된 전기 신호가 학습에 의해 증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합학습을 수행하는데 뇌와 같은 복잡한 신경계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자극을 합치고 연결한 정보에 기반하여 새로운 행동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간단한 신경계를 가지고도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신경계가 단순하더라도 동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효율적인 연합 학습 기능을 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과 전혀 다른 구조와 기능을 갖춘 식물들을 어떨까. 이들도 최소한의 학습 기능을 갖추고 자신들의 생존과 번식에 활용하고 있을까.
동물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례가 적긴 하지만 식물들에게도 외부 자극을 학습하고 이를 기억하여 반응을 보이는 특징들이 꾸준히 보고되어 왔다. 식물이 외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최초 발견은 1966년 예일대 마크 제피(Mark J Jaffe)와 아서 갤스톤(Arthur Galston)의 연구로 보인다.
이들은 알래스카 콩 식물의 줄기가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doi.org/10.1104/pp.41.6.1014).
이 식물의 특징은 줄기를 문지르면 빠르게 감기는 것인데 이 때 빛이 충분한 환경이 필요로 하며, 어둠 속에서 줄기를 문지르면 당연히 줄기는 감기지 않는다. 콩의 줄기가 외부 환경에 반응하여 감기기 위해서는 빛과 물리적 자극이 모두 필요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둠 속에서 줄기를 문지르거나 빛이 있어도 문지르는 자극을 주지 않으면 줄기가 감기는 변화를 관찰할 수 없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줄기를 문지른 수 시간 후 빛이 있는 환경에 식물을 노출하였더니 놀랍게도 콩 줄기는 문지르는 자극이 동시에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다시 감기기 시작하였다. 식물이 어둠 속에서 받은 물리적 자극을 ‘기억’하고 있다가 빛이 있는 환경이 노출될 때 이를 ‘회상’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2014년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대의 모니카 가글리아노(Monica Gagliano) 연구팀은 “미모사(Mimosa pudica)”라 불리는 식물의 연구 사례를 보고하였다 (doi.org/10.1007/s00442-013-2873-7).
미모사는 물리적 자극이 가해지면 잎과 줄기를 오므리는 방어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미모사가 담긴 화분을 일정 높이에서 반복적으로 떨어뜨려 방어 반응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였다. 반복적인 물리적 충격은 처음에는 미모사가 강하게 오므라지게 만들지만 오므리는 정도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줄어들게 된다.
습관화(habituation)이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생물들에게서 관찰되는데, 특정 자극이 반복적 또는 장기적으로 주어지면 이에 대한 반응이 점차 낮아지는 것으로 비연합 학습(non-associative learning)의 일종이다.
미모사의 경우는 떨어지는 충격이 자신에게 아무런 결과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래서 물리적 충격에도 잎을 오므리는 방어 반응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습관화 과정을 통해 미모사가 떨어지는 충격에 익숙해졌을 때쯤 이보다 강하게 미모사를 흔들어 보면 어떻게 될까. 미모사는 다시 오므리는 방어 반응을 강하게 보인다. 이는 미모사가 외부 충격에 습관화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단순히 지치거나 에너지가 부족해진 것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외부 자극들의 세기를 구분하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강하게 미모사를 흔든 이후 원래와 같은 물리적 자극으로 미모사 화분을 떨어뜨린다면 미모사는 다시 습관화 반응 화분을 떨어뜨리는 충격에 대해 오므리는 낮은 방어 반응을 보인다.
미모사가 예전에 습관화 과정 동안 학습한 물리적 충격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미모사는 습관화 기억을 장기적으로 보유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습관화를 통해 특정 충격에 익숙해진 미모사를 28일 동안 아무런 자극 없이 키우다가 다시 예전과 같은 강도의 자극을 주면 여전히 잎 오므리기 방어 반응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식물들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외부 자극들을 연합학습을 통해 기억하는 듯 하지만, 동물과 달리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다. 동물과 전혀 다른 형태와 구조를 지녔으므로 신경계 비슷한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외부 자극을 인식하고 다른 자극들과 통합되어 저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식물의 신경계를 그냥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파리와 같은 곤충을 잡아먹는 “파리지옥(Venus flytrap)”이라는 식물의 예시를 보면 동물과 비슷한 방식으로 식물들도 신경신호가 처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리지옥은 곤충이 덫에 해당되는 부분의 털인 ‘감각모’를 건드리면 입과 같이 생긴 구조를 닫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다른 식충식물들과 달리 파리지옥은 능동적으로 먹이를 붙잡고 포식하는 식물이라 한다.
그런데 이 식물은 감각모를 건드릴 수 있는 모든 자극들에 입을 닫는 것이 아니라 덫에 들어온 곤충들을 선별적으로 구분하여 입 형태의 덫 구조를 닫을 수 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덫 구조 안쪽에 감각모들이 단순히 건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2개 이상 건드려지거나 각 감각모가 일정 시간동안 충분히 건드려질 경우에만 덫 구조를 닫아 곤충을 포획되는 것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파리지옥이 입모양의 덫구조를 닫는 것은 에너지를 크게 소모하는 일이므로 감각모를 건드리는 모든 자극에 반응하는 것은 당연히 생존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선택적 포획 기능은 동물과 유사한 분자세포생물학적 기전이 식물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물의 각 부위에는 물리적 변화를 이온 흐름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기계적감응이온채널(mechanosensitve ion channel)이 존재하여 물리적 자극에 의해 수용체전위(receptor potential)를 발생시킬 수 있다.
동물도 외부의 물리적 감각을 인식할 때 유사한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식물에 존재하는 ‘체관부(phloem)’이라 불리는 관은 식물의 양분과 수분이 통과하는 통로이지만 이온들이 이동하는 구조이기도 하며 동물의 신경에서도 존재하는 소듐(Na+), 칼슘(Ca2+), 포타슘(K+) 등의 이온을 투과할 수 있는 전압개폐성 이온채널(voltage-gated)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존재하면 수용체전위가 특정 임계치(threshold) 이상으로 축적될 경우 활성전위(action potential)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체관부를 통해 활성전위가 한 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전달되게도 할 수 있다. 이 모든 메커니즘은 역시 동물 신경계에서 신경회로가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고 전달하는 메커니즘과 유사한 면이 많다.
2020년 스위스 취리히대 그로스니클라우사 박사 연구팀의 연구(doi.org/10.1371/journal.pbio.3000740)에서는 마이크로 로봇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다양한 조건으로 파리지옥의 감각모를 건드리며 덫 구조가 닫히기 위한 조건을 탐색해보았다.
그 결과 감각모가 건드려진 횟수와 무관하게 감각모를 통해 발생한 수용체전위가 여러 개의 활성전위를 유발하는 경우에만 덫 구조가 닫힐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식물도 동물과 형태는 다른 방식으로 외부 자극을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지만 그 신호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분자 수준에서는 유사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동물들도 외부 신호를 처리할 때나 어떤 정보가 기억되기 위해서는 특정 임계치 이상을 넘어야 신경회로가 작동하고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한다는 점에서 파리지옥의 덫 구조 개폐 기전은 많은 부분에서 동물의 신경계와 비슷한 메커니즘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학습과 기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지만 많은 의문을 줄지어 낳기도 한다. 학습을 하지 못하면 생명체는 생존할 수 없을까. 하등동물과 식물들은 어디까지 학습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지능이 존재할까.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물은 고등동물과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지적 능력을 가질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는 한편 예측할 수 없는 다양성에 기반하여 여러 가능성들을 탐색해 나가야할 것이다.
※필자소개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에서 근무 중이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겸임교수다. 현재 생쥐 모델을 활용해 학습과 기억을 조절하는 세포간 상호작용의 분자 기전을 연구하고 있으며, 뇌 속 기억 형성 및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저술 작업도 같이하고 있다.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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