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도 그린으로…K팝, 멋진데 착하기까지!
'공연장까지 오는 동안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 교통수단을 알려주세요.'
지난달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팝 그룹 블랙핑크 콘서트에선 국내 단독 공연에서의 첫 시도가 이뤄졌다. 바로 탄소 배출량 측정이다. 아티스트와 스태프의 식단과 음식물 쓰레기, 무대 안팎에서 발생한 폐기물 등을 모두 점검한 것이다. 이틀간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탄소 발자국도 조사했다. 관객이 직접 비행기 여정과 대중교통·자차·도보 등 교통수단, 숙박 여부 등을 묻는 질문지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이를 활용해 공연을 보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배출한 온실가스 양을 표준화된 지표로 산출했다. 이틀간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 등 각지에서 온 3만여 명 중 조사에 응한 사람은 약 2000명. YG엔터테인먼트는 올해 안에 관련 수치를 담은 정식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K팝 업계가 기후변화 대응 실천에 나서기 시작했다. 업계는 이전에도 각 사 차원에서 '지속가능보고서'를 내며 관심은 표방해왔다. 하이브, JYP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사들은 이미 본사의 탄소 배출량과 ESG(환경·책임·투명경영) 개선 활동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다만 사내 일회용품 사용 감축, 아티스트의 홍보대사 활동 등 간접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YG는 4개사 중에선 가장 늦게 보고서를 내지만 소비자와 맞닿은 공연 현장에서 실제 탄소 배출 기록을 먼저 남기게 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엔터업의 대표 상품인 공연·음반 위주로 세부 주제를 찾는 과정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됐다"며 "수치가 나온 이후 구체적인 기후 대응 방식 등을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K팝 수익 구조는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폴리염화비닐(PVC) 소재 CD 음반과 무분별한 판매를 부추기는 상술이 대표적인 문제다. 실물 음반 구매량이 해당 가수의 성적·영향력 등과 직결되고, 엔터사 매출에도 30% 안팎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회사는 랜덤 포토카드, 팬사인회 참여권, 멤버별 다종 앨범 발매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구매를 부추긴다. 유명 아이돌 사인회에 가려면 앨범을 수백 장 사야 한다는 의미로 '팬싸컷(구매 하한선)'이 공공연히 돌 정도다. 팬 1인당 CD를 수십, 수백 장씩 사는데 CD는 곧바로 버려진다.
K팝의 또 다른 핵심 축인 공연도 문화예술계에선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꼽힌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공연장의 탄소 배출량은 도서관·박물관·미술관과 비교해 가장 많은 평균 54만1699.82㎏CO2에 달했다. 특히 월드투어를 도는 대형 가수는 100여 명의 스태프와 관객 수백만 명이 비행기·자동차 등을 타고 대륙을 오가는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 발생을 동반한다.
이에 엔터사들에 의식적인 친환경 행보는 점점 의무화되는 추세다. 기후변화에 기민한 MZ세대 팬덤의 압박, 상장사로서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ESG 압박이 거세다.
이들 회사는 최근 일제히 앨범 제작에 국제삼림관리협의회(FSC) 인증 종이, 콩기름 잉크를 쓴다고 홍보한다. 회사마다 업사이클링 굿즈를 팔고, 음반 폐기물 재활용 방안이나 디지털 대체 음반도 내놓는다. 하이브의 위버스 앨범, 스타트업 네모즈랩의 네모앨범 등은 CD 없이 QR코드를 찍어 스마트폰에서 음악·화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JYP는 업계 최초로 지난해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을 이행했다. 본사 건물에서 한 해 사용한 전력량에 해당하는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기획사 책임이 더 크고 구체화돼야 한다는 게 팬들의 시각이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는 슬로건 아래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2021년 출범한 단체다. 최근엔 K팝 아티스트들이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패션 명품 브랜드를 겨냥해 탄소 배출 증가세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박진희 씨는 "해외에서까지 팬이 몰려드는 블랙핑크 콘서트에서 탄소 배출량 측정을 시도한 건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업계 전반으로 확대됐으면 한다"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진정한 친환경 콘서트라고 하긴 어렵다"고 짚었다.
친환경 콘서트 사례는 해외에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엔 영국 출신 세계적 록밴드 콜드플레이, 미국 최고 권위의 그래미상을 7회 받은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 등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직접 지속 가능한 콘서트 실현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1년 넘게 장기간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투어 중인 콜드플레이는 올해 6월 기준 탄소 배출량이 지난 투어 대비 47% 줄었다고 밝혔다. 공연장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공연을 운영했다. 관객들이 만들어낸 운동에너지를 공연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게끔 특수 자전거와 바닥도 설치했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한 것은 물론이고, 항공편 이용도 줄였다. 비행해야 할 땐 지속 가능한 항공 연료(SAF)를 택했다. 객석 하나당 한 그루의 나무 심기 프로젝트도 진행해 현재까지 500만그루를 심었다. 투어는 올해 말부터 아시아 지역으로 이어진다.
빌리 아일리시도 지난해 '해피어 댄 에버' 세계투어 이후 환경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9년 시작해 꾸준히 투어 공연의 탄소발자국 감축 활동을 벌여온 것의 일환이다. 그 결과 해당 투어에선 일회용 플라스틱 병 배출을 11만7000개 이상 줄였다. 관객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장려하고, 현장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물을 마시도록 하는 등 크고 작은 활동을 병행해 총 1만5000t 넘는 탄소 배출을 상쇄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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