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병 고쳐주는 로봇, 골골 앓는 내 주식계좌도 고쳐다오

문일호 기자(ttr15@mk.co.kr) 2023. 10. 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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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韓美 수술로봇株

주식 시장이 조정을 받으며 연일 상승분을 반납하고 있는 가운데 묵묵한 주가 상승으로 주목받는 주식들이 있다. 바로 로봇 관련 주식이다. 로봇 주식은 인공지능(AI)이 발달하면서 주식 시장에서 중요한 테마로 부상한 지 오래됐다.

최근에는 로봇 주식 중에서도 한국·미국의 의료 수술과 관련한 로봇 관련주의 성장세가 도드라진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끝나 외과 수술이 정상화된 것이 재료로 작용했다. 정밀한 수술에서 로봇이 인간 의사의 실수를 줄여줄 유일한 대안으로 부각되면서 관련 주식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수술 로봇이 질병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방어하는 데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튜이티브서지컬(ISRG)은 경기 방어주 성격의 헬스케어와 빅테크의 면모를 두루 갖춘 로봇 대장주다. 월스트리트는 최고가 대비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지금이 ISRG 투자의 적기라고 말한다. 국내 각 의료 분야 1등 로봇주인 고영과 큐렉소도 주가 조정 시마다 분할매수할 만한 주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장주 ISRG, 수술로봇 '다빈치'로 업계 1등

국내 수술 로봇주 고영과 큐렉소가 선망의 눈으로 쳐다보는 곳이 ISRG다. 이 시장의 절대 강자이기 때문이다. 평소엔 이 회사 이름을 모르지만 수술대에 올라가는 순간 로봇팔 '다빈치'와 친숙해진다. 환자에게는 아픔을 최소한으로 주고, 의사에겐 실수 확률을 줄여주는 것이 바로 다빈치다.

다빈치는 예술가이면서 공학자였고 의학자였던 레오나드로 다빈치에서 따온 것으로, ISRG의 최소 침습 수술 로봇 시스템을 뜻한다. 손떨림으로 수술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는 인간 의사 대신 로봇이 환자의 몸을 최소한으로 절개해 수술을 진행한다. 원래는 군사용으로 개발했으나 기술 개발을 통해 전 세계 대형 병원에서 '의사의 친구'로 활동하고 있다.

블룸버그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노력으로 ISRG는 전 세계 수술 로봇 시장의 81%를 장악하고 있다. 2위 업체 점유율이 9%에 그칠 정도로 독점이다. 이 때문에 월가는 ISRG를 '애플'에 비유하곤 한다. 대당 기기가 매우 비싸다는 점에선 네덜란드의 ASML에 비견된다. ASML은 첨단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1000억원대 초고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판매한다.

블룸버그에서 공시된 3분기(6~9월) 기준 ISRG의 수술 로봇 기기 가격은 대당 140만달러로, 24일 환율 기준 약 19억원이다. 여기에 부수적인 보조 기계까지 포함해 병원에서 다빈치 로봇팔을 실제 수술에 적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30억원에 달한다. ISRG는 19일(현지시간) 올 3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66.94%에 달하는 매출총이익률과 26.71%라는 막강한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독점적 지위에도 계속 새로운 로봇 기기와 서비스를 내놓으며 실적을 쌓아가고 있다. 3분기 매출은 17억437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2% 성장했다. 이처럼 1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이 지난 1분기 이후 3개 분기 연속으로 나왔다. 이 회사가 연구개발(R&D)에 진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다. 올 들어 3분기까지 R&D 투자비로 7억3870만달러를 지출했다. 이는 같은 기간 매출의 14.2%를 차지한다. 이 정도 R&D 투자 비중은 미국 내 경쟁 의료 장비 업체 '애큐레이'(12%) 보다 높다.

ISRG의 투자 리스크는 다빈치 로봇팔이 너무 비싸 환자나 병원 모두에 부담이라는 것이다. 다빈치 로봇으로 진행되는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국내 부인과 수술의 경우 1000만~2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또 중국의 경기가 꺾이면서 높은 중국 매출 비중이 문제가 되고 있다. 3분기 매출에서 32.3%가 미국 이외 지역에서 나왔는데, 이 중 30%가 중국으로 추정되고 있다.

뇌수술 로봇으로 업종 변경하려는 고영

ISRG는 100% 수술 로봇 회사이지만 한국의 고영은 반도체와 로봇 두 업종에서 관련주로 분류된다. 고영의 주력은 3차원(3D) 반도체 검사 장비다. 매출의 99%가 여기서 나온다. 반도체 경기 등락폭이 커지면서 고영은 신사업으로 수술 로봇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뇌수술용 로봇 '카이메로'다.

카이메로 프로젝트는 올해로 벌써 13년째가 된 사업이다. 본업인 3D 측정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산업통상자원부 뇌수술 국책과제를 수행한 것이 시발점이다. 정부에서 받은 돈 160억원과 회사 R&D 투자비를 합친 결과물이 카이메로다. 다빈치와 같은 절개 수술 로봇은 다수 경쟁자가 있지만 뇌수술 로봇은 국내에서 카이메로가 유일하다.

카이메로는 국내 병원 위주로 300건이 넘는 경력을 쌓았다. 지난 3분기 잠정 실적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01억원, 1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3.6%인데, 지난 2분기에 5.8%였으니 2개 분기 연속 한 자릿수의 부진이다. 고영의 이익률은 2021년 1분기 이후 올해 1분기까지 14~16%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글로벌 경기가 꺾이면서 최전선에 있는 반도체 등 설비 투자가 크게 줄어 검사 장비 이익률이 반 토막 나는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수술 로봇 R&D 투자로 마진이 하락하면서 나온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고영 주가는 2021년 1월에 사상 최고가를 찍은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고점 대비 24일 기준 하락률이 62.1%에 달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고영의 올해 말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35.4배다. 바닥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AI 열풍 지속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여부다. 먼저 고영 입장에선 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도체가 복잡해질수록 검사 장비 마진은 올라간다. 4분기 이익 100억원대 진입도 다양한 반도체에 대한 검사 수요 증가에 달려 있다.

또 이 회사의 카이메로가 4분기(10~12월) FDA 승인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현실화됐을 경우 주가가 폭발할 여지가 있다.

척추 인공관절 수술 로봇 1인자 큐렉소

정형외과 수술 로봇 회사 큐렉소의 지난여름이 뜨거웠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이 코스닥 상장사의 로봇은 주로 척추나 인공관절을 수술할 때 이용된다. 척추 수술 로봇은 '큐비스-스파인', 인공관절은 '큐비스-조인트'로 구분한다. 지난 6월 23일 척추 수술 로봇(CS200) 새 버전이 FDA 승인을 받고 큐렉소 주가는 두 달 만인 8월 25일까지 84%나 급등한다. 이날 이후 24일 현재 주가는 고점 대비 44.7% 하락한 상태다. PER 역시 내려왔지만 여전히 58배에 달한다. 2006년부터 의료업계 문을 두드린 큐렉소는 2011년 한국야쿠르트(에치와이)에 인수됐다.

에치와이는 큐렉소 지분 30.68%를 들고 있는 최대주주다. 2017년에는 현대중공업 의료 사업 부문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수술 로봇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원래는 발효유나 라면 원재료 등의 무역이 중심이었는데, 올 들어 처음으로 로봇 사업이 무역업을 추월했다.

올 상반기 기준 매출 비중은 의료 로봇 46.3%, 무역 41.3%다. 이외 임플란트 사업(12.4%)도 하고 있다. 지난 2분기 매출은 198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9.4% 성장했다. 큐렉소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8.6%다. 이 회사는 ISRG처럼 배당을 주지 않지만 ISRG에 비해 R&D 비중은 낮다.

부채 비율이 한 자릿수라는 것은 고금리 상황에서 긍정적이지만 공격적인 투자가 미흡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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