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개고 밥 먹어” 흥얼거린 그 올드팝, 다시 들으니 구슬퍼라
올드팝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면서 더 널리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보니엠의 대표곡 ‘리버스 오브 바빌론’이 대표적이다. 이 노래 시작 부분을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로 개사해 부르는 건 이미 오래전에 유행하던 개그였는데, 예능프로그램에 기상송으로 나오면서 젊은 세대한테도 유명해졌다. 흥겨운 멜로디의 이 노래, 실제로도 기상송일까? 노랫말을 보자.
‘우린 바빌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그리며 울었죠/ 사탄의 무리가 우리를 가두었던 시절/ 그들은 우리에게 노래하라고 명령했지만/ 이교도의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순 없었죠.’
헉. 그렇다. 이 노래는 이불이나 밥하고 전혀 상관없다. 대신 두 개의 지명이 나오는데, 먼저 바빌론강은 바빌로니아 왕국 시대의 유프라테스강을 말한다. 그리고 시온(시오니즘의 그 시온)은 영어 발음으로는 ‘자이언’으로 읽히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산이다. 이 곡은 구약성서 시편 137편을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찬송가이며 세계사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바빌론 유수(유배)’를 노래하고 있다.
이-팔 전쟁으로 약칭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하염없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이 건국된 뒤로 벌어진 사건만 봐서는 도통 알 수 없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벌인 무책임한 사기극(유대인과 아랍인들 양쪽에게 같은 땅에 나라를 세우게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던)도 이야기의 시작은 아니다. 조금 더 가보자. 오스만 제국, 십자군 전쟁, 예수의 탄생, 헬레니즘…. 더, 더, 아득한 과거로 계속 흘러가다 보면 2600년 전에 있었던 사건 ‘바빌론 유수’가 등장한다.
여기다. 여기가 시작이다. 더 올라가면 종교와 역사가 뒤섞인다. 그 옛날 모세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억압받던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갈라진 바다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과정은 가슴 벅찬 전설이다. 그 후 히브리인들이 이스라엘 왕국(사마리아인)과 유다 왕국(유대인)으로 분화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 끔찍한 역사는 신바빌로니아 왕국이 이 지역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었다. 침략자들은 유대인의 나라를 완전히 파괴하고 왕의 눈을 도려내었다. 왕족을 포함한 유대인들은 무려 1300㎞가 넘는 바빌론까지 끌려가 비참한 유배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흥겨운 디스코곡인 줄 알았던 ‘리버스 오브 바빌론’은 이토록 참혹했던, 그 뒤로도 이어질 유대인 잔혹사의 시작을 담은 노래인 것이다.
나라 없이 떠돌았던 유대인들이 겪은 핍박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수용소에서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한 비극이 고작 몇십년 전의 일이다. 길고도 혹독한 유랑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에게 비로소 허락된 나라 이스라엘이 얼마나 소중할지 짐작조차 안 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스라엘 나라의 존재는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원래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경상북도보다 약간 더 큰 이스라엘 영토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으로 불리던 지역이다. 팔레스타인(국가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의 공식 영토는 이스라엘 건국 후 이스라엘 영토 속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로 한정되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마저 자기 땅으로 지도에 표시하고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 영토 전체를 자기 영토로 여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원래 땅을 되찾은 거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2천년 넘게 살아오던 땅을 빼앗긴 셈이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고 권위를 내세우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보기엔 제국주의 침략 국가 미국과 영국·프랑스가 씌워준 가짜 왕관에 불과하다. 이러니 두 나라가 가뜩이나 비좁은 땅에서 사이좋게 살아갈 리 없다.
부족한 식견으로 너무 긴 역사를 너무 짧게 정리해봤는데, 시간을 내어 제대로 알아보기를 권한다. 지난 회에 소개했던 정국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는 것도 좋고 리스트에만 올려두고 미뤄온 시리즈를 몰아 보기도 좋은 주말이지만, 다들 이불 개고 역사 공부를 해보면 어떨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이-팔 전쟁은 이미 수천명이 죽었고 지금도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비극이다. 처음도 아니고 수차례 벌어졌던 전쟁이 다시 터진 것이다.
시온산의 주인은 누가 되어야 할까? 지금은 미국의 우방이지만 줄곧 침략을 당했고 한때 나라까지 빼앗겼던 우리는 이-팔 전쟁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들의 생각은 어떤지? 오랜만에 다시 듣는 보니엠의 노래가 어쩐지 구슬프다.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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