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미국 만류에도 지상군을

2023. 10. 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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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희생 감수하겠다’ 강경론
폭격 수위 올려 희생자 급증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다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10월 23일(현지시간) 가자시티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가자시티 | AP연합뉴스



지난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본격적인 지상전을 앞두고 한층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이란의 개입 등 확전으로 이어지기에 국제사회에선 신중론을 제기했으나, 하마스에 잡혀 있는 인질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지상전을 벌이겠다는 강경론이 이스라엘 내부에 팽배한 상황이다. 지상전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폭격 수위를 올리면서 가자지구에선 하루 7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인도주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확전 우려 부르는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 가능성을 계속 언급해왔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지난 10월 1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국경 근처 부대를 방문해 “곧 내부에서 가자지구를 보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헤르지 할레비 군 참모총장도 이틀 뒤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담당하는 ‘골라니여단’ 지휘관에게 “가자지구로 진입해 하마스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진입을 통해 앞서 하마스에 납치됐던 인질들을 구출하고 하마스 대원들을 소탕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혀왔다. 이를 위해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하거나, 세분화된 공격을 할 수도 있다고 CNN 등 외신은 전망한다. 일각에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집트 시나이반도로 완전히 몰아내려는 것이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이란의 개입에 따른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국제사회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이란 최고위 지도자들은 이번 전쟁에 깊숙이 개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내 정치적 리스크와 그간 추진해온 중동지역 내 패권 전략에 미칠 영향 등을 두고 현재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람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그간 하마스뿐 아니라 레바논의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예멘 내 후티 반군,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등을 지원하며 역내 수니파 국가들과 패권을 다퉜다. 이런 상황에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하마스의 팔레스타인 내 기반이 파괴되면, 이란이 이들 무장단체를 ‘대리 세력’으로 내세워 구축한 역내 네트워크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시아파의 맹주로 40년 넘게 구축해온 이란의 지역 패권에 균열이 생기는 시나리오다.

지난 10월 22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 가자지구 | AP연합뉴스



다만 이란이 직접 전쟁에 개입하기에는 국내외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란 경제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을 파기한 뒤 대규모 경제 제재를 부활시켜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지난해 시작된 ‘히잡 시위’ 등 반정부 시위도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다. 이란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최우선 순위는 이슬람공화국의 생존”이라며 “이것이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자제해온 이유”라고 전했다.

이에 이란은 전쟁에 대한 제한적인 개입을 시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22일 로이터통신은 이란이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제한적 공격을 벌이는 것을 허용하고, 자국과 연계된 역내 다른 무장단체들에는 미국을 겨냥한 수위 낮은 공격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대리 세력들을 통한 제한적인 공격을 통해, 자국이 전쟁에 직접 휘말리는 시나리오는 피하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미국의 권고에도 이스라엘 강경론 ‘팽배’

이란만큼이나 미국 역시 고심이 깊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힘이 분산된 상황에서 이번 전쟁까지 개입하면 ‘두 곳의 전선’에 연루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지상전을 통해 가자지구에서 인명 피해가 속출하면 이란이나 헤즈볼라가 더 깊게 개입할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미국의 고민거리다. 이에 미국은 하마스에 잡혀 있는 인질들의 안전이나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를 거론하며 지상전 연기를 이스라엘에 권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측에선 ‘인질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지상전을 벌이겠다’는 등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도 모든 인질이 가능한 한 빨리 석방되기를 원하지만, 인도주의적 노력이 하마스 파괴라는 임무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정보 관료 출신 아비 멜라메드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인질이 없는 것처럼 전쟁 계획을 추진하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스라엘 내부에 아직 헤즈볼라의 공격이나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들의 생사, 이스라엘군 사상자 등에 대한 우려가 있어 지상전의 범위는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0월 23일 가자지구에 처음으로 지상군을 투입했다. 제한적인 기습작전이었다. 인질들의 가족은 현재 이스라엘 정부에 전쟁을 자제하고 인질 석방 협상에 나서달라고 호소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은 지상전을 조심스레 검토하면서도 폭격의 수위는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24일 가자지구에 쏟아낸 폭격은 심대한 사상자를 불렀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이스라엘 공격으로 어린이 305명을 포함해 704명이 사망했다. 전쟁 발발 이후 이날까지 숨진 가자지구 주민들은 모두 5800여명이다. 병원 등 가자지구 내 시설이 거의 마비된 만큼 향후 인도주의 붕괴 위험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인도주의 위기가 엄습하고 있음에도 가자지구 내 생존자들은 도로의 파괴 등으로 대피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남부 일대를 안전지대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곳에도 공습이 이어져 피란이 쉽지 않다. 또 남부 역시 이미 피란민 수십만명이 몰려들어 식수와 식량, 대피소가 부족해졌기에 다시 북부로 되돌아가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CNN에 따르면 사면초가에 놓인 가자지구 일부 주민들은 자녀의 다리와 배에 이름을 적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격으로 죽게 되면 신원이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의 지상전을 앞두고 가자지구의 슬픔이 커져만 가는 양상이다.

박용하 국제부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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