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 ‘비윤’ 안을까 내칠까
이준석·유승민의 혁신 요구, 김기현 체제와 양립 어려워
국민의힘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에 따른 후폭풍을 맞고 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은 김기현 대표 체제가 유지되며 불분명해졌다. 대신 당 쇄신을 외치며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하지만 인선, 권한, 책임 등의 문제로 당 내부에서부터 회의적 반응이 나온다. 특히 혁신을 판가름할 주요 요소인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 등의 처우를 둘러싼 잡음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들을 껴안을 것이냐, 내칠 것이냐는 단순 쇄신 여부를 넘어 내년 총선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칠 문제로 풀이된다.
유 전 의원은 “12월까지 당의 변화와 쇄신을 위해 내 역할, 목소리를 다 낼 것”이라며 이른바 ‘12월 마지노선’에 불을 붙였다. 이 전 대표 역시 “신당 창당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판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 체제의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과 직접 날을 세운 이들을 ‘조건 없이’ 포용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문제는 이들이 떠난다면 당 쇄신은 ‘친윤 체제의 강화’이거나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점이다. 총선 역시 윤 대통령 이름을 앞세워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10월 23~25일까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최저 28.3%에서 최고 32.6%를 기록했다. 총선까지 남은 기간은 6개월 남짓, 촉박한 시간 속에 국민의힘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혁신위, 김기현 책임 물을 수 있나
인요한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가 위원장을 맡은 국민의힘 혁신위가 지난 10월 26일 출범했다. “제 얼굴 자체가 좀 다르잖아요. 변화를 상징합니다. 변화시킬 겁니다”라는 인 위원장 발언대로 그의 등판은 ‘깜짝 선임’에 가까웠다. 김 대표는 인 위원장 선임 배경을 두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일반 국민 시각에서 진단했다”며 “혁신위원장 인선 관련해 권한과 역할에 대해 어떤 제한을 가하는 조건을 제시한 적 없고 접촉한 분들 모두 혁신을 위한 전권을 부여한다고 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이 직접 밝힌 목표는 ‘통합’ 추진이다. 혁신 방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을 인용하며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이 내려와야 한다. 그다음에 듣고 변하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치인 출신이 아닌 위원장을 두고 ‘신선함’보다는 오히려 ‘무용론’이 부각되는 상황이다. 당장 선거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당대표는 ‘쏙’ 빼고 변화와 희생을 강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쇄신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혁신위원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지난 10월 25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시간벌기용 허수아비 혁신위원은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김 대표에게 ‘사퇴하라’고 할 정도의 혁신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혁신위가 그리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대표 시절 상근부대변인을 지낸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정바세) 대표는 이날 탈당을 선언했다. 신 대표는 “혁신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제 관점에서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본다”며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개혁을 하자면서 또 통합하겠다고 하니, 마치 ‘아이스 핫초코’ 같은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 역시 비슷하다. 국민의힘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투수 역할을 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월 24일 “깜짝 놀랐다. 한국 정치가 이렇게까지 타락을 했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나의 면피용으로 혁신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출발을 시키는데, 혁신위원장을 누구를 시킬 거냐를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고민하다 결국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강서구청장) 선거를 총지휘한 사람은 김기현 대표”라고 덧붙였다.
혁신위 무용론은 이들이 다룰 과제를 두고도 제기된다. 혁신위의 주요 과제는 ‘당정 관계 재정립’, ‘공정 총선 공천룰 확정’, ‘국정 과제를 뒷받침할 입법 성과’, ‘경제·민생 안정 위한 정책 마련’, ‘당내 비주류 및 중도층 통합’ 등이 꼽힌다. 하지만 당정 관계는 이미 김기현 2기 체제가 출범하며 대통령실과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대통령실은 “총선 공천과 당 운영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공천에 대해서는 총선기획단, 인재영입위원회 신설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혁신위가 자체적으로 공천룰을 확정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총선을 6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입법을 다룬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 혁신위가 출범한다고 해서 여소야대 국면이 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혁신위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인 위원장이 승낙 배경으로도 밝힌 ‘통합’ 추진 정도가 남는다. 인 위원장 역시 혁신위의 첫 일정으로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겠다고 밝히며 통합 움직임에 시동을 걸었다. 당 외부 통합은 ‘호남 끌어안기’로 풀어나가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해당 작업 역시 이른바 ‘비윤계’로 불리는 당 내부 통합을 달성하고 나서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혁신위가 비윤계를 붙잡을 수 있을까
17.7%. 뉴스토마토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가칭 ‘이준석·유승민 신당’이 받은 지지율이다. 해당 여론조사는 지난 10월 21일부터 2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했다. 같은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38.1%, 국민의힘은 26.1%를 얻었다. 조사대로라면 ‘이준석·유승민 신당’은 곧바로 세 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된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해당 여론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연령별·지역별 지지율이다. 특히 국민의힘과 ‘이준석·유승민 신당’을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점을 알 수 있다. 18~29세, 30대, 40대까지 모두 ‘이준석·유승민 신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앞선다. 지역별로는 광주에서 신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앞섰다. 실제 선거에까지 해당 기조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10월 19일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이 “이 전 대표가 당에서 나가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3~4% 오를 것”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 결과다. 안철수 의원의 이 전 대표 제명 시도 역시 당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결국 혁신위가 말한 통합이 연령, 지역에 대한 외연 확장이라면 국민의힘은 이준석·유승민 등의 ‘비윤계’를 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미 당 내부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윤상현 의원은 “(이 전 대표가) 나가면 우리 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고, 수도권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떨어뜨리는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신당으로 나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현실정치를 모르는 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은 ‘친윤’으로 분류되는 김 대표를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이른바 ‘김기현 2기 체제’의 출범이 쇄신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에 ‘부합한다’는 답변이 17.4%, ‘부합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59.5%로 나왔다. 김 대표의 직위 유지가 책임 회피라는 평가가 다수다. 김 대표는 다음 총선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비윤계’를 포용하거나 적어도 경쟁관계에 놓이는 것은 막아야 한다. 혁신위 등을 통해 포용 메시지를 띄우며 비윤계를 잡아두다가 마지막에 공천을 주지 않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윤계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탈당 및 신당 창당을 결심할 시점을 언급하며 압박에 나섰다. 이 전 대표는 신당 창당 여부를 묻는 질문에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가능성 측면에서는 문을 열어뒀다. 그는 “제 입장에서는 배제하지도 않고 있다”며 “보통 정당이 선거 앞두고 100일 정도면 새로운 모습을 기획하고 꾸릴 수 있다. (22대 총선) 100일 전이면 12월 말 크리스마스 이후”라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이 밝힌 ‘12월 마지노선’과 시점이 묘하게 겹친다. 이 전 대표는 그러나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할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제가 유 전 의원과 상의하고 있지는 않다”며 선을 그었다.
이들이 내세우는 쇄신은 대통령실과 당의 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 전 의원, 이 전 대표 모두 윤 대통령을 향해 날 선 비판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 이의 방증이다. 사실상 김기현 체제와는 양립이 어려운 모양새다. 실제로 인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13명으로 구성된 혁신위에도 ‘비윤계’로 분류되는 인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지난 대선 경선에서 유 전 의원 캠프 상황실장을 맡았던 오신환 전 의원 정도가 비윤계로 분류된다. 하지만 오 전 의원 역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며 친윤계와의 갈등 구도에서 어느 정도 비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역 국회의원 중에 참여한 혁신위원도 박성중 의원 1명이 고작이다. ‘(이래가지고) 혁신위가 무슨 성과를 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배경이다. 결국 혁신위는 친윤과 비윤 간에 서로 ‘헤어질 결심’의 명분이 될 가능성만 커졌다. ‘혁신위가 제대로 된 통합을 못 해서’, ‘혁신위가 제안한 통합을 그들이 거부해서’가 예상되는 구체적 명분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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