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악인의 전유물이 아니다[책과 삶]

고희진 기자 2023. 10. 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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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대너리스 카르가르옌처럼 연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저자는 낯선 상황 등 무력감을 주는 난관을 만났을 때 두려움보다는 ‘그런 상황에서 나는 누구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라고 했다. HBO 홈페이지 캡처

수평적 권력

데버라 그룬펠드 지음 | 김효정 옮김

센시오 | 328쪽 | 2만2000원

권력이 특정한 성품 혹은 능력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길 때, 보통 사람들은 권력과 자신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럴 때 권력은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욕심 많은 악한이 가진 하나의 특성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접근은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이 권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권력에서 슬며시 물러”나게 하며 “품위를 지키고 나쁜 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통제권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수평적 권력>에 따르면 권력은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권력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고 권한도 권위도 아니다. 그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자원’이다. 권력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것이며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않고 수평적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단어의 권위를 조금은 낮춘, 이런 관점에서 권력을 보게 된다면 이제 문제는 이 같은 권력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쓸 수 있는가로 넘어간다. 책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이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조지프 맥도널드 석좌교수인 저자 데버라 그룬펠드는 배우가 연기하는 것에 비유해 설명을 이어나간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설명한, 자기다워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연’이라는 대목을 끌고 온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거짓을 믿게끔 속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우리를 붙잡아주는 안정되고 일관된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의상과 소품, 말하고 행동하는 태도, 심지어 등장할 무대를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배우가 작품에 따라 새로운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듯, 일반인들도 직장과 가정 등에서 주어진 역할에 맞게 권력을 사용하면 그것이 온전한 역할 수행이자 권력을 쓰는 행위가 된다는 뜻이다. 결국 연기란 곧 ‘자기의 신체와 정신을 상황에 맞춰 제대로 쓸 줄 아는 능력’에 가까워 보인다. 이 능력은 자신을 제대로 보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야만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외부 환경에서 자신에게로 되찾아올 수 있다.

일화가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중요한 소송에서 증언을 앞뒀으나, 검사의 날카로운 태도에 맞설 용기가 없던 저자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어느 날 우연히 드라마 시리즈 <왕좌의 게임>을 보게 된다. 등장 초기 연약해 보이기만 했던 대너리스 카르가르옌이 이후 강인한 모습으로 강력한 통치자가 된 것에 감명받았다. 저자는 법정에서 자신이 카르가르옌 같은 강인한 여성을 연기해야 한다고 깨닫는다. 흔히 법정에선 판사나 검사 정도만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증인이나 피고인도 각 역할에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증인은 재판을 뒤엎을 만한 증언을 할 수도 있다. 권력을 바라보는 생각의 전환이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연기하게 하고 용기를 준 것이다.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대너리스 카르가르옌. HBO 홈페이지 캡처

최고경영자(CEO)답게 행동하지 않는 젊은 창업자에게 회의에 들어가기 전 “왕관을 쓰라”는 조언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권력은 그것을 적절히 드러내는 게 그러지 않는 것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나 회사 대표라면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에 맞는 지위로 연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업무의 하나다. 사적인 자리에선 수줍기만 했던 저자의 동료 교수가 강단에 서면 코미디언이 되고, 수더분하던 학생이 수업시간엔 공격적인 질문가가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외에도 여러 사례를 통해 격언 같은 말들을 전한다. “남성이 권력에 관심이 있는 듯이 행동하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반면, 권력에 관심이 있는 듯이 행동하는 여성은 부정적인 평가와 의심을 받는 경향”을 경계하라고 한다. 자신의 권력을 과소평가해 겸손만을 미덕으로 삼는 이들에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였던 셰릴 샌드버그를 만난 일화도 소개한다. 그는 아주 성공한 여성이었으나 저자가 만난 가장 다정한 사람이었다. 권력이 권위가 아니기 때문에 발현된 다정함이다. 이 외에도 차분하고 침착하게 “나서는 자”가 되라는 조언 등 부패한 권력 앞에서 방관자로 머물지 않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끝까지 읽어도 책은 권력을 어떻게 얻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권력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다룬다. 하지만 이 책에는 우리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 담겨 있다”는 대목은 그래서 책의 의미를 적절히 설명한다. 전반적으로 일종의 자기계발서로 보이기도 한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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