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대한 억압과 여성의 연대…英 로열오페라하우스 '노르마'

강애란 2023. 10. 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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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오예 연출…무대에 십자가 3천여개 엮어 숲속의 성전 조성
오페라 '노르마'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이한 예술의전당이 오페라극장의 기획공연을 다시 시작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빈첸초 벨리니의 걸작 오페라 '노르마'가 지난 26일 막을 올렸다.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의 2016년 알렉스 오예 프로덕션은 당시 전 세계에 생중계됐고, 이미 한글 자막 영상물로도 출시돼 오페라 애호가들 상당수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오페라극장의 실연은 영상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시각적 즐거움을 줬다.

무대디자이너 알폰스 플로레스는 3천여개의 십자가를 엮어 숲속의 성전을 조성했고, 조명디자이너 마르코 필리벡은 자연광에 가까운 조명을 시시각각 변화시켰다. 조명이 십자가들 위로 쏟아지는 장관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노르마'는 선율도 화성도 단순하고 아름다워 감상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성악가들에게는 고난도의 도전이다. 특히 아리아 '카스타 디바'(정결한 여신)는 관현악이 극도로 절제돼 있어 그 음악의 여백을 노르마 역의 소프라노가 홀로 채워야 한다. 그래서 관객도 숨을 죽이고 듣게 되지만, 노르마 역을 수없이 부른 소프라노라 해도 매번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명곡이다.

이탈리아 무대에서 수많은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해오다 한국에서 노르마 역으로 첫 타이틀 롤 데뷔를 한 소프라노 여지원(비토리아 여)에게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높은 계단구조물 꼭대기에서 노래해야 해 부담은 더욱 컸을 것이다.

여지원의 명징한 가창과 표정 가득한 음색은 대담하고 단호하면서도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의 개성을 섬세하게 드러냈다. 자신을 배신한 남편을 향한 분노의 연기에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폴리오네 역의 테너 마시모 조르다노와 아달지사 역의 메조소프라노 테레사 이에르볼리노는 기대했던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오페라 '노르마'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오로베소 역의 베이스 박종민을 포함해 외모, 연기, 음색의 표현력 면에서 최고의 적합도와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보여준 주역 가수 네 명은 세 시간에 가까운 긴 공연 시간 내내 관객의 무대 몰입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오케스트라 총주를 당당하게 뚫고 나오는 박종민의 파워와 가창력이 인상적이었다. 플라비오 역의 테너 서범석 역시 자연스럽고 뛰어난 가창을 들려줬다.

이번 공연에서 벨칸토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은 1막과 2막 노르마와 아달지사의 이중창이었다. 두 음색의 따뜻하고 깊이 있는 어울림은 청각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합창의 비중이 큰 이 오페라에서 노이오페라코러스(합창지휘 박용규)는 로베르토 아바도의 지휘에 정교하게 반응하며 장면마다 긴장과 효과를 높였다. 특히 2막의 남성합창과 엄청난 템포로 휘몰아치듯 노래하는 '전쟁의 합창'이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바도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탁월한 호흡은 서곡부터 관객의 기대를 끌어올렸다. 극도로 섬세하게 셈여림과 템포를 조절한 연주는 현악의 트레몰로 효과나 아주 가냘픈 목관의 소리까지 명료하게 전달하며 관객의 감정선을 이끌었다.

오페라 '노르마'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예의 연출에 대해서는 관객의 호오(好惡)가 갈렸다. 줄리오 체사레(줄리어스 시저)의 갈리아 원정 시대 이야기가 오늘날 오페라 관객에게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무대를 현대로 옮겨놓은 오예의 시도는 참신했다. 로마의 압제에 맞서는 드루이드족의 이야기를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삶을 위협하는 종교적 광신 또는 집단의 억압과 그에 저항하는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연출가 자기 말처럼 이는 "리스크를 감수한" 연출이었다. 연출가가 시대와 배경 심지어는 인물의 캐릭터까지 바꿔놓는 레지테아터 연출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아야 하는데, 연출에서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대결 구도가 실종되자 폴리오네라는 인물의 캐릭터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오예는 조국 스페인에서 프랑코 정권의 파시즘 독재가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합했던 아픈 역사를 극에 대입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연은 출연진이 다른 두 캐스트로 29일까지.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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