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돌연 사망…'견제세력 없는' 시진핑 체제 리스크 커진다
중국 관영언론 "27일 새벽 심장마비 사망"…
3기 맞은 시진핑 정권은 '1인 독주' 체제,
당 권력 순위 의미 사라지며 충성 경쟁 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유일한 정치적 라이벌로 여겨졌던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돌연 사망했다. 향년 68세.
중국 관영 CCTV는 27일 리 총리가 같은 날 새벽 0시 10분께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플랫폼 X(트위터)에는 그가 물에 빠져 숨졌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회생하지 못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도 전해졌다.
리커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1~2기 총리를 지내며 중국 경제를 이끈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 지난 3월 퇴임 당시엔 800여명의 국무원 직원들이 운집해 그를 환송했다.
이 자리에서 리커창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고 했다. 당시 이 발언은 국무원 직원들에게 인민을 위해 성실히 복무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해석됐는데, 이후엔 본인을 축출한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됐었다.
리커창은 안후이성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을 따라 허베이성에서 자랐다. 1974년 문화대혁명 기간 고교를 졸업하고 지식인 계층 관행대로 농촌에서 복무하다가 혁명이 종료된 후 북경대(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입시가 중단됐다가 재개된 1977년 바늘구멍 같은 시험을 뚫고 북경대에 입학한 거다. 리커창을 비롯한 77학번 세대가 중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은 배경이다.
리커창은 알려진 대로 공청단 파벌의 선두주자다. 대학 재학시절 총학생회장을 했고 1982년엔 학생 신분으로 공청단 서기를 지낸다. 이때 이미 당 고위간부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주관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공청단의 미래로 자리잡았다. 공청단 대선배인 후진타오가 리커창을 남달리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절이다. 후진타오는 이후 리커창의 가장 큰 정치적 후원자가 된다.
리커창은 1998년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 입성하고 1999년엔 허난성 성장을 지낸다. 당시 44세로 역대 최연소 성장이었다. 이후 랴오닝성 성장까지 거치며 국가주석의 유력 후보로 여겨졌으나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했던 시진핑이 2007년 상하이 당서기로 발탁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이끌던 정치파벌인 상하이방은 당시 공청단의 권력 독점을 극도로 견제했다. 그래서 상하이방이 상대적으로 중립적 색깔을 띠었던 태자당의 시진핑을 밀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리커창을 막아섰다는 해석도 있다.
배경이 어찌됐든 시진핑이 2010년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지명되면서 리커창과 시진핑의 권력 다툼은 종결됐다. 시진핑 우위의 서열이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됐고 리커창은 2013년 공산당 서열 2위 국무원 총리에 오르며 대안세력에 만족해야 했다.
리커창은 시진핑 치세하에서 여러차례 쓴소리를 하며 존재감을 내비쳤으나, 실질적으로 국가주석을 견제했던 이전 총리들에 비하면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관료 스타일의 리커창이 시진핑의 카리스마에 눌려 자신의 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해석과 함께 공청단 파벌의 세가 약해지면서 리커창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커창은 작년 신년 연설에서 본인의 임기가 올해 끝난다고 직접 밝혔고 당대회에서 중앙위원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하야를 공식화했다. 그럼에도 당내 서열 2위로 비중있는 다른 자리를 맡을 수 있다는 해석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돌연 사망하며 정치사를 마감했다.
실제로 리커창은 재임 기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생 진실 추구를 정치신념으로 삼았다. 정책을 감추면 감출수록 인민에게 손해라는 게 생전 그의 철학이었다. 시진핑 1인 집권으로 '죽의 장막'이 다시 강화되는 데에 따른 폐해를 극도로 경계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0년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COVID-19)가 퍼지자 감염병 권위자 중난산(鐘南山)이 TV에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감염된다는 게 증명됐다"고 말했다. 코로나 전염 유형은 지금은 상식이지만 감염병 초기 관련 보도가 완전히 통제됐던 중국에선 기밀이었다. 이후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사실상 팬데믹의 시작을 알린 이 발표는 리커창의 의지로 관철됐다.
같은 해 시진핑이 '탈빈곤 사회'를 이룩하겠다고 말하자 리커창은 "아직도 중국에서는 6억명이 월 수입 1000위안(약 18만원)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뼈를 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절대빈곤 해결을 위해 노점상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중국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사히는 이와 관련해 "리커창은 시진핑 1강 체제가 빠지기 쉬운 정책 과신의 함정에 제동을 걸기 위해 노력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정권의 리커창 지우기는 리커창 퇴임 이후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리커창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 경제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는 리코노믹스(리커창이 주장한 경제정책)라는 별명을 얻으며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시진핑은 3기 집권 이후 '품질강국 건설요강'이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발표, 리커창의 경제정책을 폐기했다.
리커창이 마지막으로 대중에 모습을 보인 건 지난 8월 말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 석굴에서였다. 리커창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광객들은 환호했다. 관광객들에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리커창을 본 중국 인민들이 "안녕하세요 총리님"을 외치며 인사를 건네는 영상은 중국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한 중국 매체는 없었다.
이전까지 2~3인자 자리의 역사는 잔혹사다. 리커창이 총리로 건재했던 시점 권력서열 3위는 리잔수 전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이었는데 2022년 돌연 사라졌다. 별다른 설명 없이 연초 신년다과회에 불참하면서 사실상 낙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중국 현지언론 홍콩명보는 "리잔수가 시 주석의 측근이 된 것은 삼촌 리장장 덕분인데, 리장장이 최근 어떤 사고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리커창까지 사망하면서 새로운 권력서열은 시진핑에 대한 충성경쟁으로 그대로 치환된다. 공식적으로 2인자가 된 리창은 이전 총리들이 관행처럼 이용했던 전용기를 타지 않고 전세기를 이용하는걸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전용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시진핑 하나뿐임을 보여주기 위한 건데,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전 충성'이다.
리창에 이어 공식 권력서열 3위는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장이다. 그는 지난 3월 중국 관영언론들과 만나 "올해 전인대 최대 정치적 성과는 시진핑 동지를 만장일치로 중국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재선출(3연임 성공)한 것"이라며 "모든 민족과 인민의 시 주석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고 자평한 인물이다.
권력서열은 5위지만 시진핑의 신임이 특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차이치 정치국 상무위원도 2인자 후보다. 3월 시진핑의 비서실장인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았다. 국가주석과 명목상으로는 동급인 상무위원이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시진핑 '1인 독주 체제'가 사실상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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