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가짜 회장님과 자작 문자" 남현희, 속았음을 깨닫게 된 결정적 증거(인터뷰)
남현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재벌 3세'라는 연인 전청조를 믿었다.
'어떻게 그렇게 속을 수 있을까' 싶지만 남현희의 마음을 장악한 전씨는 치밀하고 집요했다. 25일 아침 언론 보도를 접한 경찰이 남현희의 신변보호를 위해 잠실 시그니엘로 들이닥쳤다. 전씨와 함께 이날 오피스텔 라운지에서 투자 스터디를 하던 이들도 전씨에게 투자한 사실을 털어놨다. 수많은 의혹이 쏟아지는 가운데 전씨는 끝까지 남현희에게 눈물로 결백을 호소했다. 각종 사기 행각, 전과, 학창시절 과거가 잇달아 폭로되던 25일 밤까지도 전씨는 간곡하게 남현희를 설득했다. 강화도 친구, '재벌 혼외자'라는 친모에게 통화 연결을 시도해 재벌 3세임을 확인시키려 애쓰더니 26일 오전 돌연 자신이 죄를 다 뒤집어쓸 테니 집으로 가라고 했다. "유치장에 면회 오라"는 한마디를 남겼고, 남현희는 눈물을 쏟았다.
남현희가 전씨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고, 자신이 믿어온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은 건 26일 오후, 집에 돌아와 짐 정리 중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고부터다. 남현희와 전씨에겐 둘만의 통화를 위한 '세컨드' 휴대폰이 있었다. 잠실을 떠나면서 전씨의 이 휴대폰을 들고온 남현희는 전씨의 휴대폰 메신저를 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요. 부탁 좀 드리겠어요. 급하네요.' 이 첫 메시지를 시작으로 말을 편하게 놓겠다더니 이후 남현희를 아예 대놓고 '며느리'로 칭했다. '청조가 나와 어릴 적부터 떨어져 살아왔네. 며느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천재적인 놈이야. '오늘 시간이 되는가? 보고 싶네. 내 첫 며느리 아닌가.' '혼인은 언제 할 예정이니? 빠르면 좋겠구나. 아이가 어여쁘던데 필요한 게 있으면 아버지에게 얘기해주렴. 며느리도 필요한 게 있다면 얘기해주렴.' '혼인도 10월에 마무리 짓거라. 청조랑 호칭 정리도 하고, 아이도 아빠라고 부르게 하렴. 둘째도 10월에 준비했으면 하는구나. 아들 통해서 용돈 보내마' 등 수십 차례 문자 왕래가 이어졌다.
A회장과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말투가 좀 어색하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이날 전씨의 휴대폰 카톡 메시지에서 'A회장' 사칭 메시지를 발견한 남현희는 아연실색했다. 남현희에게 재벌3세임을 믿게 하려 전씨가 보낸 문자, 모두 자작극이었다. 결정적 증거를 발견한 남현희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날 밤 전씨는 남현희 자택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리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스토킹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된 후 풀려났다. 남현희는 "새벽에 집앞에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며 '계속 10분만 만나게 해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너무 무서웠다. 엉엉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못듣겠더라. 경찰의 안내대로 전화를 차단했더니 가족에게 여기저기 전화가 오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남현희는 "아무 생각이 없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일을 만드는지"라며 눈물을 쏟았다. "믿고 싶었고 믿으려고 했던 것같다. 악마인데 악마가 아니길 바랐던 것같다. 그리고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말해줘야할 것같았는데 그게 안보였다.잘못된 게 뭔지 안보였다."
남현희는 "저는 그의 돈은 탐나지 않았다. 저를 너무나 좋아해주고 정말 잘해줬다. 아카데미 사업도 주도적으로 나서줘서 좋았다. 학부모들도 반하게 하는 매력, 마력같은 게 있었다"고 했다. "저는 제 것 아닌 것에 욕심 안낸다.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돈도 선수 생활로 번 것으로 충분했다"고 말했다. 눈물을 흘리는 딸에게 남현희의 어머니는 "괜찮아. 해결하면돼 울지마, 해결하면 돼. 너도 속았잖아"라며 오열했다. 남현희는 "의심가는 건 많은데 뭐가 하나 걸려야 '너 이거 안돼, 이렇게 살면 안돼' 말이라도 하는데 걸리는 게 없었다. '촉'은 여러번 왔다. 그런데 증거가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A회장인 줄 철석같이 믿고 보낸 남현희의 카톡에 그녀의 진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우리집 며느리 되는 게 자신 있는가? 사람들 때문에 쉽지만은 않을 것이야. 청조 그놈이 이 바닥에선 유명하니 일적으로는 든든하겠지만 우리들 삶이 힘듦이 많은 삶이야'라는 가짜 A회장의 말에 남현희는 이런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며느리 되는 게)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운동선수 생활을 시작하며 성공의 길을 가기 위한 계획에 매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현 상황은 펜싱이라는 종목을 통해 받은 사랑을 후배들에게 베풀고 펜싱 종목 활성화에 힘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게 제가 운동선수 생활 동안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금 전해드리는 도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활동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살아왔던 그 뿌듯함을 유지하는 버릇이 생겼기에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 제 상황에 호화로운 생활의 환경이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던 저이기에 청조를 만나는 동안 그 환경적 부분을 탐하고 지내지는 않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아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된 부분은 맞습니다. 서로를 위해 행복한 삶을 잘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배워나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기회를 주시는 만큼 노력을 통해 집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들이 생각하는 남현희 이미지는 그대로 늘 한결같은 사람으로 변하지 않게 지내려 합니다.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23일 결혼 관련 인터뷰 당시 남현희는 "전대표님은 어리지만 이미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다. 농담으로 '인생 3회차'같다는 이야기도 한다. IT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고, 정보력도 대단하다. 결정적으로 반한 건 사람을 움직일 줄 안다는 점이다. 당당하게 요구할 줄 알고, 사람들이 저절로 따르게 하는 힘이 있다. 아카데미 학부모, 코치들도 좋아한다. 저희 가족은 물론 지도자, 학생, 학부모와 소통하면서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진심을 다해 도와줬다. 나를 도와주고 내 부족함을 메워주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무엇보다 인생의 모든 것으로 생각했던 펜싱아카데미, 남현희가 '100년 가는 아카데미'로 펜싱 저변확대, 후배 양성, 지도자 일자리 창출을 꿈꿨던 그곳은 전씨가 나타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갑자기 나타난 전씨가 해결사를 자청했고, 남현희는 자신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그를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모든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전씨는 모든 면에서 남현희를 통제했고, 지배했고, 남현희의 주변, 지인까지 장악해나갔다.
전씨는 남현희가 사건의 전말을 깨우치게 된 후에도 결백을 주장했다. 남현희의 "왜 그랬어?"라는 질문에 "내가 그런 거 아니잖아"라며 발뺌했다고 했다. 남현희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너 성격도 좋고 매력도 있고 마력도 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왜 그렇게 사니? 예쁨 받으며 살 수 있는데."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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