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반성과 변화’ 두려워 할 이유 없다[김세동의 시론]

2023. 10. 2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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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논설위원
보선 참패에도 김기현 재신임
회칠한 무덤 같은 여당 무기력
체리따봉 소동 뒤 용산 눈치만
대통령 참모도 직언 엄두 못내
尹 스타일 안 바뀌면 총선 필패
레임덕 넘어 국가적 재앙 불러

‘회칠한 무덤 같다.’ 지난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당력을 총동원하고서도 17%포인트 큰 차이로 참담하게 패배한 국민의힘이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사무총장 이하 임명직만 교체하는 한가한 대응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김태우 구청장 유죄 확정판결로 발생한 보선에 김 전 구청장을 후보로 공천하는 더불어민주당 같은 결정을 한 김 대표를 ‘탄핵’하겠다는 의원들이 없진 않았으나 참패를 하고도 나흘이나 지나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 대표 재신임을 주장하는 친윤계 의원들에게 밀려 별소리를 못 냈다.

강서구가 민주당 ‘텃밭’이라고 해도 지난해 3월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게 2.2%포인트 차밖에 밀리지 않았고, 석 달 뒤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송영길 후보에게 14%포인트 차이로 대승했던 사실에 비춰 보면 중도층 이탈이 엄청나다는 게 실증됐다. 이대로면 내년 4월 총선의 괴멸적 패배가 뻔한데도 여당 의원들은 ‘용산’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다. 유죄 확정 3개월 만에 유책 당사자를 사면 복권해 출마의 길을 열어줘 최대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윤 대통령이 13일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남의 말 하듯 했기 때문이다. 눈치로 단련된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 말의 무게중심이 ‘변화’보다 ‘차분’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초선·다선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용산 눈치만 살피고 ‘대통령 바라기’가 돼 여당 노릇을 제대로 못 하게 된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있다. 지난해 7월 26일 윤 대통령은 보름여 전에 쫓겨난 이준석 전 대표를 거론하며 원조 윤핵관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권 원내대표가 동조하자 ‘체리 따봉’ 이모티콘을 날렸다가 들통난 사건이 여당 무기력화의 결정적 계기였다. 앞서 같은 달 8일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당한 이 전 대표에 대한 윤 대통령의 절제되지 않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엄청난 파문이 일었는데도 사과는 고사하고 아무런 언급조차 않았다. 그때부터 여권 판 개딸은 비판적인 인사들에게 ‘내부 총질하지 말라’는 총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29일 159명이 사망한 핼러윈 사고가 터진 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면피성 발언으로 들끓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안전을 책임진 주무 장관의 생각 없는 설화(舌禍)에 정무적 책임을 물어 해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정부·여당 내 상당수 인사도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책임이라는 건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한다”고 하자 여권 인사들은 일제히 돌아섰다. 이로써 국민적 참사에 책임을 진 고위직은 아무도 없어 핼러윈 사고의 부담을 고스란히 여권이 지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대통령이 자초한 셈이 됐다.

민주당이 반대하면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게 뻔한데도, 10억 원대의 주식 재산 신고 누락 등 법적·도덕적 결함이 있는 ‘친구의 친구’를 후보로 내세웠다가 낙마했는데도 반성은커녕 유감 표명도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 퇴임 후 한 달 넘게 사법부 수장이 공석인데도, 아직 이균용 후보 후임 지명도 않고 있다.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모자라는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 등에서 비판받자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며 국민감정을 건드렸다. 이런 오만과 독선이 겹쳐 대통령 지지율은 30%까지 떨어졌고, 부정 평가는 60%를 넘나든다. 이런데도 여권 인사들은 윤 대통령의 실책과 실언을 지적하거나 언급 않고 ‘윤비어천가’만 불러댄다.

윤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사과와 반성에 인색하니 대통령실 참모들은 물론, 총선 공천에 목을 맨 여당 국회의원이 바른말 할 엄두를 못 낸다. 대통령이 스타일을 고치지 않으면 여당이 바뀌기 힘들고, 그 경우 내년 총선에서 참패를 피하기 어렵다. 이재명 민주당의 총선 압승은 윤 대통령의 레임덕에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 동안 파탄 난 국정을 정상화 못하고 국가적 재앙을 다시 불러낸 역사적 책임도 져야 한다.

김세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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