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말 전쟁[오후여담]

2023. 10. 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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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벌인 '팻말 전쟁'의 한 장면이다.

올해에도 대부분의 상임위와 국회 본회의에서 팻말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지난 2018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 연설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몰래 회의장에 대형 길거리 현수막 3장을 들고 들어와 대통령 연설 도중에 좌석에서 일어나 현수막을 펼치는 바람에 문제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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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지난해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벌인 ‘팻말 전쟁’의 한 장면이다. 야당 의원들은 노트북 앞에 ‘여가부 폐지 세계적 망신’이라는 팻말을 붙였고, 이에 맞서 여당 의원들은 ‘여가부 위기는 문 정부 자초’라고 맞받았다. 더 이상 토론은 없었다. 올해에도 대부분의 상임위와 국회 본회의에서 팻말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젠 대한민국 국회를 상징하는 모습이 돼 버렸다.

2012년 국회 선진화법 이후에 여야 의원 간의 몸싸움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반대로 고함, 팻말은 일상이 됐다. 상대 당에 지지 않으려고 크기를 조금 더 키우기도 하는 등 신경전도 치열하다. 토론이 있어야 할 상임위에 이렇게 짧은 문구를 넣은 팻말을 붙이다 보니 양측간의 말싸움으로 날이 샌다. 국회법 제148조에는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에 회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을 반입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147조에는 ‘폭력 행사, 함부로 발언하거나 소란한 행위로 다른 사람의 발언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했다. 국회의원 윤리강령, 윤리실천규범(제2조)에도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놓고 있지만 모두 공염불이다.

그래도 묵시적으로 본회의장과 상임위에 현수막은 갖고 들어오지 않고 있다. 지난 2018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 연설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몰래 회의장에 대형 길거리 현수막 3장을 들고 들어와 대통령 연설 도중에 좌석에서 일어나 현수막을 펼치는 바람에 문제가 된 바 있다. 미국이나 영국 의회에선 서로 말로 논쟁은 해도 우리처럼 팻말을 붙여 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장외에서도 미국은 현수막 대신 30∼100㎝ 정도 되는 직사각형 팻말을 땅에 꽂는 ‘야드 사인(Yard Sign)’이 일반화해 있다. 게시할 수 있는 장소·기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고, 당연히 교통이나 보행에 방해를 줘선 안 된다. 우리 현수막과 다르다.

지난 24일 여야는 회의장의 일상이나 다름없었던 고성과 야유, 비난 팻말을 퇴출하자는 신사협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이런 선언을 한 지 하루 만에 민주당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고 딴소리를 한다. 정치권의 약속을 믿은 국민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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