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에 눌려 끝내 날개 못 편 2인자… 리커창 中 총리 사망
한때 후진타오 유력 후계자, 시진핑 정치 라이벌
시진핑 견제 속 10년간 존재감 無 ‘불운한 2인자’
자기주장 강하고 토론 좋아해 ‘쓴소리’ 내놓기도
리커창(李克强·68)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한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라이벌로 꼽혔고, 10년간 중국 경제를 이끈 리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중국 사회는 애도를 표하고 있다.
중국중앙TV(CCTV)와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상하이에 머무르던 리 전 총리는 지난 26일 심장마비로 인해 이날 0시 10분 사망했다. 신화통신은 “전력을 다해 응급조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1955년 7월에 안휘성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베이징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과 석·박사까지 마친 경제 전문가다. 1993년 38세 나이에 중국 공산당 산하 청년 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장관급)에 오르며 마찬가지로 공청단 1서기를 지냈던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총애를 받았다. 허난성, 랴오닝성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시 전 주석과 동시에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했다.
이때 후 전 주석의 뒤를 이을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계파상 혁명원로의 자제 그룹인 태자당에 속하면서도 지방정부와 장쩌민계 상하이방까지 포용한 시 주석에 결국 밀려났다. 2008년 3월 시 주석이 리 전 총리를 제치고 국가부주석에 올랐고, 2013년 국가주석까지 직행했다. 리 전 총리는 같은 기간 상무부총리, 국무원 총리에 만족해야 했다.
◇ 한때 시진핑 라이벌, 권력다툼서 밀려 2인자로… 정책 쓴소리도
집권 초기에는 시 주석이 국방·외교 등을 책임지고 리 총리는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시 주석으로 권력이 집중되며 예상은 빗나갔다. 게다가 이들은 이념적으로 맞지 않았다. 리 전 총리는 경제통답게 ‘성장’을 중시했지만, 시 주석은 ‘분배’를 우선시하며 ‘공동부유(共同富裕·다 함께 잘살기)’를 내세웠다.
홍콩 명보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열정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발언 도중에도 생각이 다르면 토론을 서슴지 않았다. 시 주석의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내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가 퍼진 직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 감염병 권위자 중난산(鐘南山)이 TV에 등장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감염이 증명됐다”고 공표했는데, 이 발언을 촉구한 사람이 리 전 총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코로나19 관련 보도를 완전히 통제했지만, 아사히 신문은 “리 총리가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라고 지시한 사례”라고 했다.

같은 해 시 주석이 코로나19 대유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샤오캉(小康·의식주 걱정 없이 풍족) 사회 건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도 리 전 총리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6억 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8만원)에 불과하다”며 섣부른 목표라고 맞섰다. 아사히신문은 “리 전 총리는 ‘시진핑 1인 체제’가 빠지기 쉬운 ‘과신의 함정’에 제동을 걸려고 애쓴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지난해에도 리 전 총리는 “경제사회 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 직책이며, 깨끗한 정치를 의미하는 당풍건설의 필연적 요구”라면서 정책 집행 과정에서 구호만을 외친다거나, 좋은 성과만 상부에 보고하고 문제점은 숨기는 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는 “시 주석이 사실상 주도해 온 경제정책 집행의 부진을 은근히 비판하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절대 권력 체제를 구축한 시 주석 앞에서 리 전 총리의 이같은 시도는 무용지물이었다. 임기 내내 시 주석의 절대 권력을 넘지 못했고, ‘불운한 2인자’, ‘유령 총리’ 등으로 불리며 10년 내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시진핑 3연임을 앞두고 코로나19가 좀처럼 잡히지 않자 ‘경제통’인 리 전 총리가 집권해야 한다는 여론이 한때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약 54분의 업무 보고를 끝으로 물러났다. 그는 송별사로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고 했다.
시 주석과 국영언론은 꾸준히 ‘리커창 지우기’ 작업을 실시했다. 지난 2015년 리 전 총리가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정책은 시진핑 3기에서 나온 ‘품질강국 건설요강’이라는 새 정책으로 대체됐다. 리 전 총리가 지난 3월 퇴임하며 국무원, 재정부 등 정부 부처를 돌며 고별 인사를 하는 각종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그의 고별인사마저 검열 대상에 올랐다는 점은 ‘리커창 색채’를 완전히 지우려는 중국 집권부의 의도를 보여준다.
중국인들은 리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중국 대표 소셜미디어(SNS) 웨이보 등에서 리 전 총리의 사망 소식 게시물에는 “편히 잠드시길(一路走好)”이라는 댓글이 수십만개씩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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