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성량의 '월드 클래스' 테너 이용훈…오페라 '투란도트'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아무도 잠들 수 없다! 오 공주님, 당신도 잠들지 못하겠군요."
지난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상징하는 아리아 '아무도 잠들 수 없다'(Nessun Dorma)가 울려 퍼졌다. 칼라프 왕자를 연기한 테너 이용훈의 목소리는 자신이 얼음같이 차갑던 투란도트 공주의 마음을 얻어냈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이날 열린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는 '월드 클래스' 테너 이용훈의 국내 데뷔 무대였다. 그는 2010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무대에 '돈 카를로'로 데뷔한 뒤 이탈리아 스칼라 극장 등 세계 유수의 극장에서 공연하며 명성을 얻었지만 스케줄 문제로 국내에서 공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출연 중인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페라의 '투란도트'가 휴식기에 들어가며 잠시 짬을 내 국내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일정이 빡빡해 지난주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처음으로 출연진을 만나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이용훈은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돋보이는 압도적 성량으로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우며 본인의 기량을 뽐냈다.
'아무도 잠들 수 없다'를 부르는 도중 성량을 조절해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내는 대목에서는 전율이 일기도 했다. 그가 서정적인 음색과 활기찬 목소리를 동시에 지닌 '리리코 스핀토 테너'(Lirico spinto tenor)로 불리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표정 연기와 몸동작을 병행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극을 이끄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칼라프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시녀 류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리아 '당신은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이지만'에서는 눈빛으로 애절한 감정을 담아냈다. 이용훈은 가슴을 쿵쿵 치거나 뒤로 돌아서서 노래하는 장면에서도 명확하게 가사를 전달했다.
공연이 끝난 뒤 이용훈은 "20년 동안 기다렸던 국내 데뷔 무대라 그 어떤 외국 무대보다 긴장되고 떨렸다"며 "사랑하는 한국 팬들을 직접 만나니 너무 기쁘고 가슴이 설레고 행복했다. 해외 일정으로 시차 적응이 안 되어 부족한 점도 많고 힘이 들었지만, 팬들이 사랑으로 맞아주시고 반겨주셔서 감격적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투란도트'는 손진책 연출의 오페라 데뷔 무대기도 했다. 1974년 연극 '서울 말뚝이'로 데뷔한 뒤 연극, 창극 등을 연출해온 그는 푸치니의 곡과 가사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새롭게 해석하는 도전에 나섰다.
원작에서 칼라프는 공주가 낸 수수께끼를 모두 풀었음에도 결혼을 받아들이지 않자, 해가 뜨기 전까지 공주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패배를 인정하겠다는 내기를 걸어 공주를 자극한다. 이름을 알아내는 데 실패한 투란도트 공주는 칼라프 왕자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결말을 맞는다.
반면 이번 공연은 칼라프의 이름을 이야기할 수 없다며 목숨을 바친 시녀 류의 사랑에 초점을 뒀다. 칼라프와의 내기에서 패배한 투란도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저승에서 재회한 류와 함께 "왕자의 이름이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손진책 연출은 투란도트의 통치로 인해 공포에 떨던 군중들이 류와 칼라프로 인해 사랑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점을 부각했다. 다만 칼라프에게 스스로 이름을 밝히라 요구하던 군중들이 한순간에 사랑을 깨닫는다는 설정은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무대가 열리고 흰옷을 입은 백성들이 무대로 쏟아져나오는 결말은 어두운색의 배경과 대비를 이루며 극적인 효과를 유발했다.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도 연출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이윤정은 핏빛 드레스와 날카로운 목소리로 시종일관 서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목숨을 끊기 직전 칼라프에게 이름을 들은 뒤 희열을 느끼며 미소를 짓는 연기가 인상을 남겼다. 류를 연기한 소프라노 서선영은 칼라프를 향한 마음을 애처롭게 표현하며 울림을 줬다.
공연은 29일까지 열린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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