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거래 대응 시장감시체계 임기내 토대 마련” [헤경이 만난 사람-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전력
“공매도 사회적 합의로 재개해야”
대담 : 이정환 증권부장
엘리트 관료. 서울대를 졸업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행정고시를 거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자리에 오르며 관료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뒤 한국거래소 이사장까지 역임한 그의 약력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흐트러짐 없는 헤어스타일과 안경 속으로 보이는 부리부리한 눈, 아나운서와 같은 또렷한 목소리는 자본 시장 전문가로서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이미지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올해 12월로 3년간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손 이사장. 임기 마지막 해까지도 그의 앞엔 전문성을 십분 발휘해 풀어 나가야 할 일들로 가득했다. 연초 스스로 올해 중점 과제로 꼽았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구체적 방안과 결과를 도출해야 했다. 이와 연결해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공매도 재개 이슈에 대한 해법을 요구하는 시장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느 하나 후순위로 제쳐둘 수 없는 굵직한 현안들이 계속 이어진 가운데 잇따라 터져 나온 ‘주가 조작’ 사태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거래소 수장으로서 손 이사장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마지막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업무에 매진 중인 손 이사장을 헤럴드경제는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 “주가조작범, 경제 이득보다 더 큰 처벌 내리기 위한 입법 절실”= “기존의 방법으론 잡아내지 못하는 신종 기법으로 인해 주가 조작 사태가 연이어 벌어졌다는 점은 거래소에겐 뼈아픈 일입니다.”
올 한 해 국내 증시를 뒤흔들었던 ‘주가 조작’ 사건을 사전에 막지 못한 책임자로서 손 이사장이 밝힌 솔직한 심경이다.
지난 4월 발생한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하한가 사태’와 ‘제2차 하한가 사태’, 최근 발생한 ‘영풍제지발 하한가 사태’ 등의 발생 원인으로는 무자본 인수합병(M&A), 전환사채(CB)를 활용한 대규모 부정 거래, 고속 알고리즘을 이용한 시장 질서 교란 행위, 다수 명의 계좌를 활용한 장기 주가 조작 등이 꼽힌다.
이런 문제와 더불어 손 이사장은 지금껏 보지 못한 수법의 주가 조작에 거래소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시장과 ‘소통’에 부족했던 점도 꼽았다. 그는 “시장이 진화하는 만큼 거래소도 시장과 평소 활발한 소통을 함으로써 시장 교란 세력보다 앞서나가 길목을 막았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일각에선 ‘사후약방문’이란 비판도 있지만, 그만큼 “크게 배웠고, 진화를 위한 행동을 시작하게 됐다”는 게 손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시감위)도 신종 이상거래 적출을 위해 6개월(중기), 연간(장기) 기준을 신설하는 종합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1년 전 주가 대비 200% 이상 상승한 장기 상승 종목에 대해서도 필요시 투자환기가 가능토록 매매양태 등 불건전성을 반영한 초장기 투자경고지정 요건도 신설했고, IP 우회와 차명을 이용한 다수 계좌를 동원한 이상거래를 적발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매매패턴 유사성 분석 등 연계계좌 판단 수단을 다양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손 이사장은 “거래소 시감위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초동 조사 기관으로서 이상거래 대응 시스템을 개편하는 등 전반적인 시장감시체계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강조했다.
손 이사장은 “강력 범죄와 달리 주가조작범의 경우 처벌보다 범죄 행위를 통한 경제적 이득이 더 큰 것이 현실”이라며 주가조작범에 대한 처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입법적 지원이 절실하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법안이 통과돼 시행이 예정된 3대 불공정거래행위 과징금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주가조작 혐의 단계에서부터 계좌 등 자산을 신속히 동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불공정 거래 전력자의 경우 일정 기간 거래 제한을 가하고, 상장사 임원으로 취업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엄정하고 다양한 제재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위한 토대 마련에 매진 중=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단연 외국인 투자자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K-자본시장’ 영업사원으로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만나온 그는 “한국 시장이 주주친화적이지 못하다”라는 지적에 더 뼈아팠다고 한다. 손 이사장은 “지난 임기 동안 수많은 외국계 큰손 투자자들과 만났을 때 한국에 투자하길 꺼려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들어보니 바로 미흡한 주주환원과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회계정보의 불투명성을 꼽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다. 손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유지된 외국인 ID 제도와 투자내역 보고 의무 폐지와 장외거래 신고제 완화 등은 올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12월 결산법인 2267개 상장사 중 28.5%(646개사)가 ‘깜깜이 배당’을 막기 위한 방안이 담긴 배당절차 개선 정관을 개정했다”며 “영문 공시 의무화에 대비하기 위한 상장법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만, 손 이사장은 기업들의 ESG 의무 공시를 당초 2025년에서 1년 연기하기로 한 결정은 기업들의 준비 기간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현실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했다. 또 손 이사장은 “국제 관행 맞게 논의하는 흐름도 우리가 존중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하지만 최근 국내 논의는 (ESG 공시를) 미래의 먹거리 수단을 삼은 분들에 의해서 약간 변질된 느낌이 있다”며 호흡을 고르면서 논의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 “공매도 재개 바람직...시장 참여자 공감해 형성될 때가 적정 시점”=‘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코리아 프리미엄’ 원년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상징물처럼 여겨지고 있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노력에 대해선 “편입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된다”는 것이 손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MSCI 회장과 만나 대화를 나눴을 때 ‘선진국’이란 교실의 동급생들이 한국 증시가 이 집단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고 자연스럽게 반길 수 있는 수준이 됐을 때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란 결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란 조언을 얻었다”며 “거래소는 한국 증시가 재평가될 수 있는 기반 마련을 위해 하던 일을 묵묵히 해 나가겠다”고 했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과 관련된 논의로 올 한 해 자연스레 따라붙은 것이 바로 ‘공매도 규제 완화’다. 공매도 전면 재개는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한 선결과제인 것처럼 표현되고 있다.
손 이사장은 연초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가격 발견의 효율성을 높이고 유동성을 증가시킨다는 순기능을 고려하면 공매도를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다만, 손 이사장은 “공매도 재개 시점은 현재 공매도에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개인 투자자를 비롯한 모든 시장 참여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가 적절할 것”이라며 “불법 공매도를 근절하고 투자자의 신뢰를 먼저 회복하는 것이 원활한 공매도 재개를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손 이사장은 올해 처음으로 공매도 규제 위반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제재를 받은 증권사명을 공개하는 등의 강도 높은 처벌이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밖에도 손 이사장은 새롭게 출범하는 대체거래소(ATS)와 자본시장 혁신을 위해 협력을 하면서도 선의의 경쟁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손 이사장은 “거래소는 향후 상장, 공시, 시장감시·청산 등 다양한 기능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매매체결 기능만 갖는 ATS 출범에 따라 위상이 약해진다고 보지 않는다”며 “동일 기능·동일 규제 원칙 아래 경쟁으로 인한 이익이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정리=신동윤·유혜림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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